[이상문의 라오스로 소풍갈래?] 라오스 정신문화유산 `탁발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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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작성일20-07-30 19:34본문
↑↑ 루앙프라방의 탁발은 전통문화의 한 전형이기도 하지만 관광산업으로 변용돼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된다.
[경북신문=이상문기자] 출가한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덕목 가운데 두타행이라는 것이 있다. '두타'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버린다, 떨쳐버린다, 씻는다, 닦는다' 등의 뜻을 갖는다. 수행자들이 출가 이전에 맺었던 세속과의 일체의 인연을 잘라내는 고행을 두타행이라고 하는 것이다.
↑↑ 루앙프라방의 탁발은 중요한 관광자원으로 발전했다.
◆ 두타행의 핵심은 '탁발'
이 두타행 중에 언제나 걸식해 신도나 국왕 등의 공양을 따로 받지 않는다, 걸식할 때는 마을의 일곱 집을 차례로 찾아가서 빈부를 따지지 않고 걸식하며, 일곱 집에서 밥을 얻지 못하면 그날은 먹지 않는다, 하루에 한 차례를 한자리에서 먹고 거듭 먹지 않는다, 항상 배고프지 않을 정도로만 먹고 발우 안에 든 음식만으로 만족한다는 조항이 있다.
↑↑ 현지인들과 관광객이 뒤섞인 탁발은 라오스의 아름다운 아침 풍경이 된다.
승려들의 탁발은 바로 이 두타행 중 걸식과 같은 뜻으로 행해진다. 탁발의 발은 수행자들의 음식을 담는 그릇인 발우를 가리키는 말이므로 탁발이란 걸식으로 얻은 음식을 담은 발우에 목숨을 기탁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수행자들이 탁발을 하는 것은 어떤 생산 활동이나 상업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규율에 의해 선택된 생존의 방식이다. 그러므로 탁발은 수행자들 스스로 수행을 가로막는 일체의 세속적 행위와 선을 긋는 방법이고, 자신의 마음속에 잔존한 인연을 씻어내는 행위다. 또 수행자들의 탁발에 보시를 하는 속인들은 선업을 쌓는 계기가 된다. 절묘하게 아퀴가 맞는 메커니즘이다.
↑↑ 탁발행렬에 참여하는 관광객들이 공양할 수 있는 물품을 파는 상인들은 새벽녘부터 길거리에 나와 준비를 한다.
◆ 관광상품으로 변용하는 탁발행렬
라오스의 아침은 스님들의 탁발행렬로 시작된다. 동이 틀 무렵 스님들은 발우를 메고 길거리로 나선다. 라오스 말로 딱밧이라고 하는 탁발은 인도차이나 불교국가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지만 루앙프라방의 탁발행렬이 가장 대규모다. 스님들이 길거리로 나서기 전부터 길거리에 밥과 과자, 과일 등속이 든 바구니를 앞에 두고 앉아 기다리는 현지인들과 이를 목격하기 위해 새벽잠을 줄이고 현장으로 달려간 여행자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특히 왓씨엥통 사원에서부터 야시장이 서는 시사방봉 거리는 탁발을 느낄 수 있는 핵심 거점이다.
↑↑ 태국에서 라오스를 찾은 관광객들이 탁발을 준비하고 있다.
라오스 스님들의 탁발행위는 두타행의 원칙과 약간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탁발로 얻은 음식만 먹는 규율을 엄격하게 지킨다. 최근에는 탁발행렬에 동참해 시주를 경험하고자 하는 여행자들이 늘어나고, 이를 상대로 시주 세트를 판매하는 상인들도 등장했다. 루앙프라방의 탁발은 수행자들의 경건한 규율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 변용을 하는 중이다. 그러므로 여행자들이 직접 탁발을 경험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자기 자신을 자세히 한 번 둘러봐야 한다. 과연 탁발의 진정한 의미를 체득하고 있느냐는 것을 먼저 점검해야 한다. 탁발이 여행자들에게 단순히 볼거리로 전락해 버린다면 라오스의 중요한 정신문화유산 하나가 세속화 되는 결과를 맞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형편이 어려운 어린아이들은 탁발행렬의 마지막줄에 앉아서 스님들의 보시를 기다린다.
◆ 불우한 중생에게 되돌려주는 탁발
탁발행렬에서 여행자들이 놓치기 쉬운 대목이 있다. 바로 시주하는 현지인들 속에 커다란 빈 바구니를 내놓고 기다리는 남루한 행색의 어린이들이다. 이들은 시주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스님들이 탁발로 얻은 음식을 다시 얻어가기 위해 거리로 나선 것이다. 스님들은 자신의 발우에서 음식을 떼어내 아이들의 빈 바구니에 담아준다. 자신들의 일용할 양식을 불우한 중생들에게 되돌려 주는 행위다.
스님의 탁발 음식을 나눠 얻은 아이들은 자신들이 사는 집으로 돌아가 주변의 굶주리는 이웃 어린이들과 다시 나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욕심에 가득 찬 우리에게 라오스의 탁발행렬은 엄청난 교훈을 던지는 것이다. 라오스에서 구걸을 하는 거지를 볼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이즈음에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이상문 iou518@naver.com
[경북신문=이상문기자] 출가한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덕목 가운데 두타행이라는 것이 있다. '두타'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버린다, 떨쳐버린다, 씻는다, 닦는다' 등의 뜻을 갖는다. 수행자들이 출가 이전에 맺었던 세속과의 일체의 인연을 잘라내는 고행을 두타행이라고 하는 것이다.
↑↑ 루앙프라방의 탁발은 중요한 관광자원으로 발전했다.
◆ 두타행의 핵심은 '탁발'
이 두타행 중에 언제나 걸식해 신도나 국왕 등의 공양을 따로 받지 않는다, 걸식할 때는 마을의 일곱 집을 차례로 찾아가서 빈부를 따지지 않고 걸식하며, 일곱 집에서 밥을 얻지 못하면 그날은 먹지 않는다, 하루에 한 차례를 한자리에서 먹고 거듭 먹지 않는다, 항상 배고프지 않을 정도로만 먹고 발우 안에 든 음식만으로 만족한다는 조항이 있다.
↑↑ 현지인들과 관광객이 뒤섞인 탁발은 라오스의 아름다운 아침 풍경이 된다.
승려들의 탁발은 바로 이 두타행 중 걸식과 같은 뜻으로 행해진다. 탁발의 발은 수행자들의 음식을 담는 그릇인 발우를 가리키는 말이므로 탁발이란 걸식으로 얻은 음식을 담은 발우에 목숨을 기탁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수행자들이 탁발을 하는 것은 어떤 생산 활동이나 상업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규율에 의해 선택된 생존의 방식이다. 그러므로 탁발은 수행자들 스스로 수행을 가로막는 일체의 세속적 행위와 선을 긋는 방법이고, 자신의 마음속에 잔존한 인연을 씻어내는 행위다. 또 수행자들의 탁발에 보시를 하는 속인들은 선업을 쌓는 계기가 된다. 절묘하게 아퀴가 맞는 메커니즘이다.
↑↑ 탁발행렬에 참여하는 관광객들이 공양할 수 있는 물품을 파는 상인들은 새벽녘부터 길거리에 나와 준비를 한다.
◆ 관광상품으로 변용하는 탁발행렬
라오스의 아침은 스님들의 탁발행렬로 시작된다. 동이 틀 무렵 스님들은 발우를 메고 길거리로 나선다. 라오스 말로 딱밧이라고 하는 탁발은 인도차이나 불교국가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지만 루앙프라방의 탁발행렬이 가장 대규모다. 스님들이 길거리로 나서기 전부터 길거리에 밥과 과자, 과일 등속이 든 바구니를 앞에 두고 앉아 기다리는 현지인들과 이를 목격하기 위해 새벽잠을 줄이고 현장으로 달려간 여행자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특히 왓씨엥통 사원에서부터 야시장이 서는 시사방봉 거리는 탁발을 느낄 수 있는 핵심 거점이다.
↑↑ 태국에서 라오스를 찾은 관광객들이 탁발을 준비하고 있다.
라오스 스님들의 탁발행위는 두타행의 원칙과 약간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탁발로 얻은 음식만 먹는 규율을 엄격하게 지킨다. 최근에는 탁발행렬에 동참해 시주를 경험하고자 하는 여행자들이 늘어나고, 이를 상대로 시주 세트를 판매하는 상인들도 등장했다. 루앙프라방의 탁발은 수행자들의 경건한 규율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 변용을 하는 중이다. 그러므로 여행자들이 직접 탁발을 경험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자기 자신을 자세히 한 번 둘러봐야 한다. 과연 탁발의 진정한 의미를 체득하고 있느냐는 것을 먼저 점검해야 한다. 탁발이 여행자들에게 단순히 볼거리로 전락해 버린다면 라오스의 중요한 정신문화유산 하나가 세속화 되는 결과를 맞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형편이 어려운 어린아이들은 탁발행렬의 마지막줄에 앉아서 스님들의 보시를 기다린다.
◆ 불우한 중생에게 되돌려주는 탁발
탁발행렬에서 여행자들이 놓치기 쉬운 대목이 있다. 바로 시주하는 현지인들 속에 커다란 빈 바구니를 내놓고 기다리는 남루한 행색의 어린이들이다. 이들은 시주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스님들이 탁발로 얻은 음식을 다시 얻어가기 위해 거리로 나선 것이다. 스님들은 자신의 발우에서 음식을 떼어내 아이들의 빈 바구니에 담아준다. 자신들의 일용할 양식을 불우한 중생들에게 되돌려 주는 행위다.
스님의 탁발 음식을 나눠 얻은 아이들은 자신들이 사는 집으로 돌아가 주변의 굶주리는 이웃 어린이들과 다시 나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욕심에 가득 찬 우리에게 라오스의 탁발행렬은 엄청난 교훈을 던지는 것이다. 라오스에서 구걸을 하는 거지를 볼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이즈음에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이상문 iou5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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