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태섭 칼럼] 과학문명의 발전 득인가 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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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물류 대표 배태섭 작성일20-07-30 19:12본문
↑↑ TS물류 대표 배태섭더 이상 과학문명이 발전하는 것은 인류에게 재앙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장 극명한 예로 지구온난화를 든다. 북극의 빙하가 녹고 있고 뜻하지 않는 이상기후로 자연재해가 수시로 발생하고 있는 것은 인류가 지나치게 발달한 문명의 이기에 녹아들었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도로 위로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는 안락한 의자에 앉아 냉난방이 가동된 실내의 쾌적한 환경에서 음악을 들으며 여행을 즐길 수 있지만 그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로 지구는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느 것을 택해야 할지 누구도 선뜻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다.
어느 과학자는 우주에서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가진 별은 지구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니까 지구가 얼마나 소중한 별인지 자각해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소중한 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우주에서 유일한 별을 병들게 하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사람이 죽으면 다른 별이나 세상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가정은 종교에서나 가능한 얘기고 생명이 끝나면 그 에너지가 다른 원자로 변환돼 지구의 흙을 보태거나 다른 에너지로 남겨져 떠돌아다닌다고도 했다. 더러는 우주의 다른 별로 옮겨가서 존재할 수도 있다.
인류가 악을 쓰면서 과학을 발전시킨 것은 바로 유한한 생명을 더욱 윤택하게 살게 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일 것이다. 삶의 환경이 과거 수십 년 전에 비해 천지개벽을 이루고 주거지의 모양새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바뀌었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누가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세계 어디서나 통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우리의 할아버지 대에서 초저녁 군불을 지피지 않고 버튼 하나로 밤새도록 온 방안이 따뜻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인류는 끔찍할 정도의 속도로 과학문명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고 불과 몇 년 후에는 현재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무언가가 우리 삶속에 활개를 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과연 어느 것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일까.
가치관에 따라서 현대의 문명으로 안락하게 살아가는 삶을 선호할 수도 있고 너무나 비인간적이어서 과거 다소 불편했더라도 인간적인 삶을 사는 것이 좋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어느 한국화가의 작업실 옥호는 '불편당'이었다. 한옥으로 지어진 작업실을 둘러볼 때 크게 불편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그는 자신의 작업실 이름을 '불편당'으로 지었다.
예술 작품은 편리한 환경에서보다 불편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더 수작이 태어날 수 있다는 선입견이 그런 이름을 짓게 만들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관점은 어쩌면 낡은 생각일 수도 있다. 요즘에는 쾌적하고 단순한 작업실에서 더 많은 창작을 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아직도 철필과 연필로 소설을 쓰기를 고집하는 작가가 있다고 하지만 대다수의 작가들은 컴퓨터로 집필을 한다.
발달된 과학문명이 자연재해를 불러온다는 주장과 거의 같은 맥락을 가진 주장은 인간성을 약화시킨다는 주장이다. 기계와 더욱 밀접해졌고 인간과 인간의 사이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암묵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는 사라져 가고 있고 기계적인 약속에 의한 사회 구조가 형성돼 간다는 아쉬움도 크다.
하지만 과학 문명이 인류의 삶에 과연 절대적으로 해로운 것이기만 할까.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의학의 발달로 난치병이 서서히 점령돼 가고 있으며 어지간한 자연의 위협에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은 과학이 기여한 바다.
앞으로 인류의 삶이 개선되는 속도는 과거의 발전 속도보다 엄청나게 빨라질 것이다. 한 세대가 건너가면 지금의 우리 환경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중심에 인간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TS물류 대표 배태섭 kua348@naver.com
도로 위로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는 안락한 의자에 앉아 냉난방이 가동된 실내의 쾌적한 환경에서 음악을 들으며 여행을 즐길 수 있지만 그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로 지구는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느 것을 택해야 할지 누구도 선뜻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다.
어느 과학자는 우주에서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가진 별은 지구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니까 지구가 얼마나 소중한 별인지 자각해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소중한 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우주에서 유일한 별을 병들게 하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사람이 죽으면 다른 별이나 세상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가정은 종교에서나 가능한 얘기고 생명이 끝나면 그 에너지가 다른 원자로 변환돼 지구의 흙을 보태거나 다른 에너지로 남겨져 떠돌아다닌다고도 했다. 더러는 우주의 다른 별로 옮겨가서 존재할 수도 있다.
인류가 악을 쓰면서 과학을 발전시킨 것은 바로 유한한 생명을 더욱 윤택하게 살게 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일 것이다. 삶의 환경이 과거 수십 년 전에 비해 천지개벽을 이루고 주거지의 모양새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바뀌었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누가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세계 어디서나 통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우리의 할아버지 대에서 초저녁 군불을 지피지 않고 버튼 하나로 밤새도록 온 방안이 따뜻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인류는 끔찍할 정도의 속도로 과학문명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고 불과 몇 년 후에는 현재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무언가가 우리 삶속에 활개를 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과연 어느 것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일까.
가치관에 따라서 현대의 문명으로 안락하게 살아가는 삶을 선호할 수도 있고 너무나 비인간적이어서 과거 다소 불편했더라도 인간적인 삶을 사는 것이 좋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어느 한국화가의 작업실 옥호는 '불편당'이었다. 한옥으로 지어진 작업실을 둘러볼 때 크게 불편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그는 자신의 작업실 이름을 '불편당'으로 지었다.
예술 작품은 편리한 환경에서보다 불편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더 수작이 태어날 수 있다는 선입견이 그런 이름을 짓게 만들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관점은 어쩌면 낡은 생각일 수도 있다. 요즘에는 쾌적하고 단순한 작업실에서 더 많은 창작을 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아직도 철필과 연필로 소설을 쓰기를 고집하는 작가가 있다고 하지만 대다수의 작가들은 컴퓨터로 집필을 한다.
발달된 과학문명이 자연재해를 불러온다는 주장과 거의 같은 맥락을 가진 주장은 인간성을 약화시킨다는 주장이다. 기계와 더욱 밀접해졌고 인간과 인간의 사이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암묵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는 사라져 가고 있고 기계적인 약속에 의한 사회 구조가 형성돼 간다는 아쉬움도 크다.
하지만 과학 문명이 인류의 삶에 과연 절대적으로 해로운 것이기만 할까.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의학의 발달로 난치병이 서서히 점령돼 가고 있으며 어지간한 자연의 위협에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은 과학이 기여한 바다.
앞으로 인류의 삶이 개선되는 속도는 과거의 발전 속도보다 엄청나게 빨라질 것이다. 한 세대가 건너가면 지금의 우리 환경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중심에 인간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TS물류 대표 배태섭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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