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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생활칼럼] 저승에 따라갈 수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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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영미 작성일20-07-2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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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김영미사람살이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부끄러운 일이 부끄럽지 않게 되기도 하고 칭찬받아 마땅한 일도 지탄을 받는 일이 허다해졌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근본은 있다. 그 중 자식이 부모를 위하는 마음은 변하려야 변할 수 없는 불변이다. 다만 행하는 방법이 조금씩 바뀌는가 싶다.
 
  부모님을 집에서 모시는 일이 드물어졌다. 몸만 아니라 정신이 아프거나 연세가 많아 거동이 불편해도 요양원에 모신다. 예전 같으면 부모를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현대판 고려장 운운하며 비틀림을 받던 때가 그리 멀지않은 걸로 기억한다. 이제는 생의 마지막은 요양원에서 마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전문교육을 받은 요양사들이 시스템에 따라 돌봐주는 요양원이 여러모로 효율적이라 여긴다.
 
  영희씨의 엄마가 편찮으신 것은 벌써 팔 년 전이다. 어느 날부터 자꾸 잊어버리고 했던 말 또 하고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 밥을 차리는 둥 건망증이 심해졌다. 한밤중에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가 반복되자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병원에 모셔갔다. 그리고 치매진단을 받아 가까운 요양원에 모셨다.
 
  영희씨는 평생을 엄마와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았음을 안 것은 엄마의 부재 이후이다. 밥을 해 먹고 출근을 하고 돌아오면 캄캄한 집에 불을 켜고 또 혼자 밥을 먹으며 많이 쓸쓸했다. 그러면서 엄마에게 따신 밥을 해 드린 적이 많지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사람이 밖에서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는데는 또 다른 사람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조차하지 못한 그간의 삶이었다. 주위에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형태로 사는 것이라 여겨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미안하고 외로운 마음에 요양원을 자주 찾았다. 무엇이라도 도움이 될까하여 일손이 부족한 주방에서 채소를 다듬어주다 취직까지 하게 되었다. 
 
  늦은 나이에 새삼 배우게 된 식당일은 고되다. 위생복에 방수 앞치마까지 두르고 불앞에 서면 십 분을 넘기지 않고도 땀으로 온 몸을 샤워할 지경이다. 옷 속에서 일어나는 은밀한 사정을 말해본들 경험해보지않은 사람들은 머리로만 이해를 한다. 꽃샘추위에도 사그라질 기미가 없던 땀띠는 날이 더워지는 여름엔 더 심해질 것이다.
 
  그래도 영희씨는 그만둔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왜냐면 엄마 곁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아니면 이렇게나마 밥을 해드릴 기회가 영영 없을 것 같기에 땀띠나 어깨가 아픈 정도는 참아낸다. 이즈음에 엄마는 딸도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아졌다. 밥 이외에는 아무것도 의미를 두지 않는다. 맛이 있는지 간이 맞는지조차 관심 밖이다. 먹는 행위 자체만이 중요하다. 
 
  요양원에는 방문객이 자주 오는 어른도 있지만 일 년에 두어 번도 찾아오지 않는 어른도 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해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르신도 자식이 다녀가면 한동안은 생기가 돈다고 한다. 반면 다녀가지 않은 환자는 기운이 없다. 요양사들이 더 신경을 쓰고 정성을 다해도 소용이 없단다.
 
  영희씨가 배식을 도우러 이층으로 올라갔을 때 다른 어르신들은 부러운 눈빛이 된다. 직원이라는 것이 마치 무슨 특혜를 누리는 냥 미안하다. 그래서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외면하듯 내려온다. 그리고 창을 통해서만 엄마를 본다. 마치 아사녀가 아사달을 보려 영지못을 들여다보듯 말이다. 그조차도 들키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영희씨가 "내 부모가 소중하듯 남의 부모도 소중하다. 내 엄마가 편하려면 같이 계시는 엄마들도 편해야 된다. 이승의 끝자락에서 만나 한방에 기거까지 하는 인연이 보통 인연이겠는가. 짐작컨대 저승인들 이승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승에서 동무는 저승에 가서도 친하게 지낼 것이 분명하다. 그때 미움받지마시라고…" 하더니 "딸이 저승까지는 따라갈수 없지않느냐" 덧붙인다.
 
  어떤 이들은 가까이 있으며 자주 찾지 않는다 이상하게 여기기도 할 것이다. 내 부모만 챙기면 그만이지 남의 부모까지 어찌 생각하느냐 할 수도 있다. 내 부모 내 자식 내 것만 소중한 세상이다. 물질로 보여주거나 그러한 행동들이 부각되고 칭찬받는다. 영희씨를 보면서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구나!  눈에 보이는 효도 있지만 가만히 지켜보는 효도 있다는 걸 알았다. 영지못 바닥보다 깊은 효심이 보인다.
수필가 김영미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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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