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학호 화가의 조약돌 그림 가득한 예술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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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교 작성일20-07-12 20:10본문
[경북신문=서인교기자] 한결같이 돌(石)이라는 소재에 천착한지가 30여년이다. 오랜 세월 구르고 굴러 닳아버린 조약돌, 작가는 그 돌을 꼭 빼닮았다. 발에 차이고 굴러도 둥글둥글 모나지 않은 모습으로 꿋꿋하게 제 자리를 지키는 돌 같은 남자. 돌로 회화의 지평을 넓혀온 돌 연작은 수양에 버금간다. 돌 그림이 가득한 근석당(近石堂)에서 조약돌 작가 남학호 화가를 만났다.
근석당은 그의 당호다. 삼도헌(三道軒) 정태수(鄭泰洙) 서예가의 작명이고, 현판 글씨는 율산(栗山) 리홍재(李洪宰)의 작품이다. 유네스코 규범에 속한 남학호 화가의 조형관에 대해서 알아본다.
▶ 줄곧 돌(石)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
- 영덕 영해가 고향으로 나고 자란 환경적 요인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산 높고 골 깊은 태백산맥 끝자락 칠보산(七寶山)이 있고, 넓는 들을 가로 지르는 강을 따라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성장했다. 해변에는 형형색색 이쁜 조약돌, 다양한 모양의 조약돌이 지천에 깔려있었다. 이러한 환경이 천연의 스승인 셈이었고 예술적 감성을 갖추기에 특별한 동기부여가 됐다고 본다.
처음에는 수묵 위주의 작업이었지만 장르 경계를 허물고 재료에 제한을 두지 않는 작업으로 80년대부터 변화를 거듭하는 돌(石) 그림에 중심을 두고 있다. 조약돌은 작은 우주(宇宙)다. '작은 모래알 하나에도 우주가 있다'는 말을 상기한다면 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진 조약돌은 우주라고 해도 큰 무리는 아니다. 삶의 집합체인 조약돌에는 인생이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다. 높은 곳으로부터 구르고 굴러 마지막 단계에 다다른 곳은 가장 낮은 곳. 낮은 곳에서 빛나는 조약돌은 사랑받는 대상으로 변모한다.
긴 시간 동안 물에 씻기거나 바람에 마모되면서 거친 표면이 둥근 모습으로 갖춰왔다. 매끄러운 표면은 살이 깎이는 고통을 견딘 인내이자 상흔이다. 이런 조약돌에 인생이 얼비친다. 세월에 부딪치고 닳은 조약돌은 세상 풍파에 시달리는 우리네 삶의 모습과 같다.
▶1000호가 넘는 대작을 연이어 발표하는 이유는?
- 화가들은 나름의 설정된 목표가 있다고 본다. 영원히 기억될 특별한 그림을 남기려는 열망이 있고,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기겠다는 욕망 말이다. 화업 40년을 결산 한다는 마음으로 3년에 걸쳐 큰 작품들을 그렸다.
작품의 제목은 'Stone in heart(life)'다. 돌의 마음과 그 생명에 착안해 대상을 주관적으로 해석한 작가는 자기감정을 조약돌들의 극사실적인 묘사에 투영시켰다. 조약돌에 감정을 이입한 작가는 무생물인 돌을 주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의 돌은 생명을 부여받고 숨을 쉰다. 보일 듯 말 듯 작으면서도 세밀하게 그려놓은 나비가 그 의미를 더욱 강화시킨다.
돌 표피에는 암호 같은 기호, 하트 문양, 항상 나비 한 마리가 화면 속을 날아다닌다. 화면 속의 나비는 작가의 이상(理想)인 것으로 보인다. 돌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펴보면 풍화의 흔적과 함께 작가가 장난스럽게 새겨놓은 문양들이 숨은 그림처럼 새겨져 있다. 그 조약돌은 작가의 작업을 통해 돌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는다. 그렇게 그려진 조약돌은 비로소'石心(生命)'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정적인 그림에서 동적으로 작용하는 나비가 작가에게는 특별한 생명체인 듯하다.
▶화가로서의 하루 일상은 ?
-당나라 선승 백장(百丈)은 '一日不作 一日不食(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식사하지 않는다)'이라고 했다. 성서 데살로니가 후서 3장 10절에도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 했다. 예술가도 하나의 직업이다. 노동을 하듯 하루 8시간씩 붓을 놓지 않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나는 '돌을 그리다 도를 닦는다'고 우스갯소리를 던지기도 한다. 돌을 향한 집념과 탐구, 부단한 노력을 했던 결과물이다. 그 돌을 그리면서 돌의 근성을 닮아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40여 년 화가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돌 틈 사이로 파고드는 빛과 바람, 그리고 물처럼 관람객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상과 감동이 더해져 마침내 石心 시리즈는 완성된다.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
-화가 생활 40년이 지났다. 인생은 육십부터라는데 이순(耳順)도 넘겼으니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난해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기획한 중견작가 초대전이 한 달간 있었고, 올해는 코로나-19 펜데믹에서도 수성아트피아 초대전이 이뤄지는 관계로 인생 2막의 원년으로 삼을까 한다.
화가 남학호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는 진짜 작업을 보여줄 때가 아닌가 한다. 그동안의 과정 40년은 준비의 시간이었고 이제부터 진짜 화가로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작업 방식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현장에서 수집해 온 조약돌을 작업실에서 연출해서 구도를 잡고 그려나가는 정물화 기법을 구현하고 있다.
조약돌을 수집하고 스스로 구도와 빛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작업이 보다 자유로워졌다. 조약돌을 탑처럼 쌓기도 하고, 돌과 돌 사이의 여백을 조절하는 등 자유자재로의 연출이 가능해졌다. 나의 의도를 이입할 수 있게 돼 작업이 훨씬 자유로워졌다.
남학호 작가는 1979년 스무 살 때 경북도미술대전에서 입선하면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대구대학교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신라미술대전, 대구시미술대전, 경북미술대전에서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1990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한편, 한국화에 뿌리를 두고 서양화법의 궤도를 넘나드는 화가 남학호씨의 '화업40년' 展이 수성아트피아 초대로 21일부터 26일까지 호반갤러리에서 열린다. 100호 이상의 작품 20여점이 발표된다.
서인교 sing4302@hanmail.net
근석당은 그의 당호다. 삼도헌(三道軒) 정태수(鄭泰洙) 서예가의 작명이고, 현판 글씨는 율산(栗山) 리홍재(李洪宰)의 작품이다. 유네스코 규범에 속한 남학호 화가의 조형관에 대해서 알아본다.
▶ 줄곧 돌(石)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
- 영덕 영해가 고향으로 나고 자란 환경적 요인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산 높고 골 깊은 태백산맥 끝자락 칠보산(七寶山)이 있고, 넓는 들을 가로 지르는 강을 따라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성장했다. 해변에는 형형색색 이쁜 조약돌, 다양한 모양의 조약돌이 지천에 깔려있었다. 이러한 환경이 천연의 스승인 셈이었고 예술적 감성을 갖추기에 특별한 동기부여가 됐다고 본다.
처음에는 수묵 위주의 작업이었지만 장르 경계를 허물고 재료에 제한을 두지 않는 작업으로 80년대부터 변화를 거듭하는 돌(石) 그림에 중심을 두고 있다. 조약돌은 작은 우주(宇宙)다. '작은 모래알 하나에도 우주가 있다'는 말을 상기한다면 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진 조약돌은 우주라고 해도 큰 무리는 아니다. 삶의 집합체인 조약돌에는 인생이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다. 높은 곳으로부터 구르고 굴러 마지막 단계에 다다른 곳은 가장 낮은 곳. 낮은 곳에서 빛나는 조약돌은 사랑받는 대상으로 변모한다.
긴 시간 동안 물에 씻기거나 바람에 마모되면서 거친 표면이 둥근 모습으로 갖춰왔다. 매끄러운 표면은 살이 깎이는 고통을 견딘 인내이자 상흔이다. 이런 조약돌에 인생이 얼비친다. 세월에 부딪치고 닳은 조약돌은 세상 풍파에 시달리는 우리네 삶의 모습과 같다.
▶1000호가 넘는 대작을 연이어 발표하는 이유는?
- 화가들은 나름의 설정된 목표가 있다고 본다. 영원히 기억될 특별한 그림을 남기려는 열망이 있고,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기겠다는 욕망 말이다. 화업 40년을 결산 한다는 마음으로 3년에 걸쳐 큰 작품들을 그렸다.
작품의 제목은 'Stone in heart(life)'다. 돌의 마음과 그 생명에 착안해 대상을 주관적으로 해석한 작가는 자기감정을 조약돌들의 극사실적인 묘사에 투영시켰다. 조약돌에 감정을 이입한 작가는 무생물인 돌을 주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의 돌은 생명을 부여받고 숨을 쉰다. 보일 듯 말 듯 작으면서도 세밀하게 그려놓은 나비가 그 의미를 더욱 강화시킨다.
돌 표피에는 암호 같은 기호, 하트 문양, 항상 나비 한 마리가 화면 속을 날아다닌다. 화면 속의 나비는 작가의 이상(理想)인 것으로 보인다. 돌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펴보면 풍화의 흔적과 함께 작가가 장난스럽게 새겨놓은 문양들이 숨은 그림처럼 새겨져 있다. 그 조약돌은 작가의 작업을 통해 돌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는다. 그렇게 그려진 조약돌은 비로소'石心(生命)'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정적인 그림에서 동적으로 작용하는 나비가 작가에게는 특별한 생명체인 듯하다.
▶화가로서의 하루 일상은 ?
-당나라 선승 백장(百丈)은 '一日不作 一日不食(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식사하지 않는다)'이라고 했다. 성서 데살로니가 후서 3장 10절에도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 했다. 예술가도 하나의 직업이다. 노동을 하듯 하루 8시간씩 붓을 놓지 않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나는 '돌을 그리다 도를 닦는다'고 우스갯소리를 던지기도 한다. 돌을 향한 집념과 탐구, 부단한 노력을 했던 결과물이다. 그 돌을 그리면서 돌의 근성을 닮아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40여 년 화가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돌 틈 사이로 파고드는 빛과 바람, 그리고 물처럼 관람객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상과 감동이 더해져 마침내 石心 시리즈는 완성된다.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
-화가 생활 40년이 지났다. 인생은 육십부터라는데 이순(耳順)도 넘겼으니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난해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기획한 중견작가 초대전이 한 달간 있었고, 올해는 코로나-19 펜데믹에서도 수성아트피아 초대전이 이뤄지는 관계로 인생 2막의 원년으로 삼을까 한다.
화가 남학호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는 진짜 작업을 보여줄 때가 아닌가 한다. 그동안의 과정 40년은 준비의 시간이었고 이제부터 진짜 화가로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작업 방식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현장에서 수집해 온 조약돌을 작업실에서 연출해서 구도를 잡고 그려나가는 정물화 기법을 구현하고 있다.
조약돌을 수집하고 스스로 구도와 빛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작업이 보다 자유로워졌다. 조약돌을 탑처럼 쌓기도 하고, 돌과 돌 사이의 여백을 조절하는 등 자유자재로의 연출이 가능해졌다. 나의 의도를 이입할 수 있게 돼 작업이 훨씬 자유로워졌다.
남학호 작가는 1979년 스무 살 때 경북도미술대전에서 입선하면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대구대학교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신라미술대전, 대구시미술대전, 경북미술대전에서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1990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한편, 한국화에 뿌리를 두고 서양화법의 궤도를 넘나드는 화가 남학호씨의 '화업40년' 展이 수성아트피아 초대로 21일부터 26일까지 호반갤러리에서 열린다. 100호 이상의 작품 20여점이 발표된다.
서인교 sing43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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