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지만 정이 넘칩니다˝ 평화로움 가득한 `상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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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작성일20-06-28 20:06본문
↑↑ 상라리 자붓마을 전경
[경북신문=김영식기자] 양남면 상라리(上羅里)는 양남면의 가장 북쪽에 있는 나산 계곡의 위쪽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상라리라 불렀다. 상라리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농사 이외에는 다른 경제적 방법이 없는 100% 농촌마을이다. 또 양남면에서는 가장 규모가 작은 마을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63가구에 118명의 주민이 모여 사는 마을이니 충분히 '작은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비록 규모는 작지만 주민들이 하나로 뭉쳐 정답게 살아가는 상라리는 대한민국 어느 마을보다 더 평화로운 마을이라 할 수 있다.
↑↑ 올해 100세가 된 정기화 할머니가 작은 아들과 함께 툇마루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상라리는 자붓(自富)마을과 웃나(上羅)마을로 이뤄져 있다. 자붓마을은 옛날 이 마을에 살아가는 주민들이 의식주에 곤란을 느끼지 않고 화목하게 지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양남면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자붓마을은 지금도 외지에서 생활에 곤란을 느끼던 사람들이 이주해와 정착하면 곧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마을 앞으로는 편도 1차선의 좁은 도로가 나 있고 그마저도 불과 10년 전에 양북면 어일리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나아리에서 어일리로 이어지는 큰 도로가 있어 이 마을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이 도로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전거동우회 회원들이 주말이면 줄을 지어 이 도로를 이용해 레이스를 펼친다.
↑↑ 상라리 김재용(오른쪽) 이장이 마을 원로들과 마을 일을 의논하고 있다.
주민들의 60~70%만 상라리에서 거주를 하고 있고 나머지는 이곳에 집을 지어두고 주말에만 이용하는 도시사람들이다. 실제로 거주하는 주민들의 90%는 농사로 살아가고 나머지 10%는 한수원 관련 기업에 종사하는 직장인들이다.
↑↑ 상라리의 넓은 들판
이 마을에 도로가 뚫리기 전에 주민들은 생산한 쌀과 잡곡을 등에 지거나 머리에 이고 인근 하서리나 어일리, 감포읍, 외동읍 입실리 시장까지 팔러 다녔다. 가장 가까운 하서리까지도 20리 길이어서 걸어서 간다면 최소한 2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골짜기 중 골짜기 마을이어서 학교도 모두 걸어서 다녔는데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리면 상라리 학생들이 달리기를 거의 휩쓸었다고 한다.
1970년대 새마을사업이 시작됐을 때는 좁은 논두렁길밖에 없었지만 길을 넓히는 데 마을사람들이 모두 부역에 나섰다. 그때 뚫었던 길로 그나마 경운기가 다닐 수 있는 농로가 만들어졌다.
↑↑ 상라저수지
1970년대 초반 월성원전이 들어서면서 이 마을은 달라졌다. 웃나마을 앞 들판은 모두 자갈밭이었지만 월성원전에서 지원해 상라저수지가 만들어지고 자갈밭을 개간해 농토로 만들었다. 그때 조성한 농토가 모두 12만평 정도가 됐다. 하지만 농사를 짓던 인구가 모두 고령화로 접어들면서 현재는 약 7만평의 농토가 인근 양남면과 울산 중구 병영농협의 작목반이 농토를 빌려 부추와 블루베리를 재배하고 있다.
마을 원로인 이태희(81) 전 이장은 30년 전 울산에서 대기업에 다니다가 퇴직 후 이 마을로 이주해 왔다. 이 전 이장은 "처음 이 마을에 와 보니 각성바지들이 살아가는 마을이라서 그랬는지 텃세가 없이 편안하게 정착할 수 있었다"며 "그동안 이장도 지내고 마을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평화로운 마을을 만드는 조정자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 웃나마을의 평화로운 골목길
김재용(44) 이장은 올해 처음 이장으로 선임됐다. 김 이장은 "이 마을에서 나이가 가장 어리지만 이 마을 어르신들이 편안하게 살아가는 환경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한다"며 "모든 의사결정을 주민들과 함께 의논하고 특히 어르신들의 말씀을 귀기우려 수렴해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이장은 또 "마을의 농토가 모두 절대농지에 묶여 있어 보다 생산적인 활용을 할 수 없는 형편"이라며 "그렇게 때문에 마을 자산도 매우 적어 새로운 마을 공동체 사업을 시작하기에 어려운 실정이지만 더욱 고민하고 연구해서 모든 주민이 만족할 만한 마을사업을 구상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상라리의 최고령자는 정기화 할머니로 올해 100세가 됐다. 정 할머니는 아직 아침, 저녁이면 호미를 들고 밭에 나가서 일을 할 정도로 건강하다. 정 할머니는 "이제 힘에 겨워 농사일도 할 수 없으니 하루해가 지루하게 느껴진다"며 "동무들도 모두 먼저 저 세상으로 가고 없어 외롭기도 하고 길쌈도. 바느질도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니 무료하지만 평생 살아온 이 마을이 고요하고 정이 넘쳐 젊은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와 위로해 줘 견딜만 하다"고 말했다.
상라리의 월성원전 자매부서는 대외협력처 자재부다. 김진수 차장은 "양남면에서 가장 고요한 마을이지만 자매활동을 위해 찾아가면 항상 웃음이 그치지 않고 정답게 맞아주는 주민들"이라며 "상라리가 더욱 잘 살 수 있도록 마을 주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더욱 꼼꼼히 챙기겠다"고 말했다.
김영식 7494929@naver.com
[경북신문=김영식기자] 양남면 상라리(上羅里)는 양남면의 가장 북쪽에 있는 나산 계곡의 위쪽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상라리라 불렀다. 상라리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농사 이외에는 다른 경제적 방법이 없는 100% 농촌마을이다. 또 양남면에서는 가장 규모가 작은 마을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63가구에 118명의 주민이 모여 사는 마을이니 충분히 '작은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비록 규모는 작지만 주민들이 하나로 뭉쳐 정답게 살아가는 상라리는 대한민국 어느 마을보다 더 평화로운 마을이라 할 수 있다.
↑↑ 올해 100세가 된 정기화 할머니가 작은 아들과 함께 툇마루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상라리는 자붓(自富)마을과 웃나(上羅)마을로 이뤄져 있다. 자붓마을은 옛날 이 마을에 살아가는 주민들이 의식주에 곤란을 느끼지 않고 화목하게 지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양남면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자붓마을은 지금도 외지에서 생활에 곤란을 느끼던 사람들이 이주해와 정착하면 곧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마을 앞으로는 편도 1차선의 좁은 도로가 나 있고 그마저도 불과 10년 전에 양북면 어일리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나아리에서 어일리로 이어지는 큰 도로가 있어 이 마을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이 도로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전거동우회 회원들이 주말이면 줄을 지어 이 도로를 이용해 레이스를 펼친다.
↑↑ 상라리 김재용(오른쪽) 이장이 마을 원로들과 마을 일을 의논하고 있다.
주민들의 60~70%만 상라리에서 거주를 하고 있고 나머지는 이곳에 집을 지어두고 주말에만 이용하는 도시사람들이다. 실제로 거주하는 주민들의 90%는 농사로 살아가고 나머지 10%는 한수원 관련 기업에 종사하는 직장인들이다.
↑↑ 상라리의 넓은 들판
이 마을에 도로가 뚫리기 전에 주민들은 생산한 쌀과 잡곡을 등에 지거나 머리에 이고 인근 하서리나 어일리, 감포읍, 외동읍 입실리 시장까지 팔러 다녔다. 가장 가까운 하서리까지도 20리 길이어서 걸어서 간다면 최소한 2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골짜기 중 골짜기 마을이어서 학교도 모두 걸어서 다녔는데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리면 상라리 학생들이 달리기를 거의 휩쓸었다고 한다.
1970년대 새마을사업이 시작됐을 때는 좁은 논두렁길밖에 없었지만 길을 넓히는 데 마을사람들이 모두 부역에 나섰다. 그때 뚫었던 길로 그나마 경운기가 다닐 수 있는 농로가 만들어졌다.
↑↑ 상라저수지
1970년대 초반 월성원전이 들어서면서 이 마을은 달라졌다. 웃나마을 앞 들판은 모두 자갈밭이었지만 월성원전에서 지원해 상라저수지가 만들어지고 자갈밭을 개간해 농토로 만들었다. 그때 조성한 농토가 모두 12만평 정도가 됐다. 하지만 농사를 짓던 인구가 모두 고령화로 접어들면서 현재는 약 7만평의 농토가 인근 양남면과 울산 중구 병영농협의 작목반이 농토를 빌려 부추와 블루베리를 재배하고 있다.
마을 원로인 이태희(81) 전 이장은 30년 전 울산에서 대기업에 다니다가 퇴직 후 이 마을로 이주해 왔다. 이 전 이장은 "처음 이 마을에 와 보니 각성바지들이 살아가는 마을이라서 그랬는지 텃세가 없이 편안하게 정착할 수 있었다"며 "그동안 이장도 지내고 마을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평화로운 마을을 만드는 조정자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 웃나마을의 평화로운 골목길
김재용(44) 이장은 올해 처음 이장으로 선임됐다. 김 이장은 "이 마을에서 나이가 가장 어리지만 이 마을 어르신들이 편안하게 살아가는 환경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한다"며 "모든 의사결정을 주민들과 함께 의논하고 특히 어르신들의 말씀을 귀기우려 수렴해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이장은 또 "마을의 농토가 모두 절대농지에 묶여 있어 보다 생산적인 활용을 할 수 없는 형편"이라며 "그렇게 때문에 마을 자산도 매우 적어 새로운 마을 공동체 사업을 시작하기에 어려운 실정이지만 더욱 고민하고 연구해서 모든 주민이 만족할 만한 마을사업을 구상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상라리의 최고령자는 정기화 할머니로 올해 100세가 됐다. 정 할머니는 아직 아침, 저녁이면 호미를 들고 밭에 나가서 일을 할 정도로 건강하다. 정 할머니는 "이제 힘에 겨워 농사일도 할 수 없으니 하루해가 지루하게 느껴진다"며 "동무들도 모두 먼저 저 세상으로 가고 없어 외롭기도 하고 길쌈도. 바느질도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니 무료하지만 평생 살아온 이 마을이 고요하고 정이 넘쳐 젊은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와 위로해 줘 견딜만 하다"고 말했다.
상라리의 월성원전 자매부서는 대외협력처 자재부다. 김진수 차장은 "양남면에서 가장 고요한 마을이지만 자매활동을 위해 찾아가면 항상 웃음이 그치지 않고 정답게 맞아주는 주민들"이라며 "상라리가 더욱 잘 살 수 있도록 마을 주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더욱 꼼꼼히 챙기겠다"고 말했다.
김영식 74949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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