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 생활칼럼] 명언은 절대진리다
페이지 정보
수필가 김영미 작성일20-05-20 19:30본문
↑↑ 수필가 김영미"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무색해지는 요즘이다. 나라가 위급할 때마다 국민들의 힘을 모으던 명언이 코로나19로 인한 사태에는 바뀌어야 할듯하다.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감염된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신조어가 생기면서 반가운 이와 손을 잡는 것조차 꺼려지게 되었다. 될 수 있는 한 집에 머물면서 사람이 모인 곳이면 피해야 감염을 피할수 있단다. 학교와 유치원이 문을 닫고 아이들이 집에 머문 지 오래다.
꽃피는 봄을 온통 잘라먹었으니 오월 들어서는 진정되리라 했다. 확진자가 줄어들면서 이제는 끝이라는 느슨한 생각에 일침을 가하듯 다시 확장세다. 온 국민이 힘들다며 울상이다. 그중에서도 농산물 판로가 막힌 농민들의 속은 타들어간다.
보리를 생산하는 김씨는 살이 확 내렸다. 학교 급식에 납품하던 보리쌀이 학생들이 등교를 하지 않게 되면서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고스란히 남은 보리 가마를 보면서 곧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봄을 났다. 여름이 가까워지는데 여전히 학교는 문을 열지 않고 등교를 하더라도 당분간은 급식은 하지않을 듯하다.
논에서 햇보리는 익는데 걷어 들여도 쟁일 자리가 없다. 햇보리가 나면 창고에 있는 보리는 묵은 보리가 되어 더 팔기가 어렵다. 학교와 계약만 하지 않았다면 서둘러 어찌 처리할 방도를 취해봤을수도 있다.
영양의 균형을 맞춰 키워야하는 학생들이 먹을 것이라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어 눈치만 보다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손해도 손해이지만 아까운 곡식이 제 사용처에 쓰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올해도 보리를 많이 심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속 편하게 그냥 벼를 심고 말 것을 하는 후회도 살짝 든다. 벼는 일부나마 정부수매를 한다. 보리는 수매를 하지 않는다. 전혀 판로를 보장받지 못하게 되면서 농가들은 보리 생산을 중단했다.
키워놓고도 팔수가 없는데 어쩌겠나. 흑보리쌀이라던가, 찰보리같은 고급품을 생산도 해봤지만 소비량은 미미하다. 그나마 학교에 급식을 하게 되면서 판로가 열리는가 했는데 코로나19로 완전히 닫혀버린 것이다.
주부의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루 세끼 밥을 하려니 힘이 든다. 밥을 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보다 식탁에 앉히기는 더 힘들다며 하소연이다. 아이들은 각자 방에 들어 자가 격리를 확실히 하는 중이다.
새벽에 화장실이라도 가다 마주치면 낯이 설어 서로 "헉" 비명을 지를 지경이라며 엄살을 보탠다. 어찌된 것이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진 이후 얼굴 대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방문이라도 열어보면 부스스한 머리와 휑한 눈이 게임캐릭터가 빠져나와 앉았나 싶을 지경이다.
엄마된 의무와 권리로 잔소리라도 할라치면 도리어 자기들도 힘이 든다고 울상이다. 그래. 너희들도 힘이 들겠지! 어른인 나도 미쳐버릴 지경인데 엇부르기 같은 너희들은 오죽하겠니! 전염병은 곧 끝이 날것이고 학교만 가면 잃었던 생활리듬을 찾으리라.
이렇게 속 위안을 삼으며 방문을 닫고 만다. 어서어서 학교만 가게 되기를 바라면서 아침마다 치렀던 등교전쟁도 기쁘게 받아들이리라 다짐을 두는 요즘이다.
집집마다 사정이 이러한데 보리밥이 웬 말이겠나. 차려진 쌀밥도 먹기 귀찮아하면서 간편식인 냉동식품이나 배달음식으로 대충 해결한다.
몸에 해로운줄 알지만 우선 편하고 맛이 있으니 말릴 방법이 없다. 자가 격리의 끝은 또 다른 대란으로 이어질까 걱정이다. 아무래도 갑자기 살이 확 찐 자들이 벌일 다이어트전쟁은 치열할 것 같다. 미리 잡곡밥과 신선한 야채를 먹으면 그런 사태는 막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고통을 아는 법이다.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황금찰보리쌀 학교 급식 납품 중단"이라는 문자 한통이면 되었다. 여기저기서 마음을 모아 주었다.
보릿고개에 먹던 보리밥이 생각난다며 한 포대기, 미숫가루를 만들어 나눌 것이라며 또 한 포대기를 추가한다. 농민 김씨는 이제 햇보리를 걷어 보관할 자리가 생겼다며 한숨을 돌린다. 최소한 학생들의 등교가 시작될 때까지의 시간은 벌었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살리기는 마음먹기에 따라서인가 싶다.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절실한 때다. 이순신 장군이 명랑해전에서 나라를 구했듯 신탁통치의 위기에서 이승만대통령이 국민을 설득했듯이 다시 한 번 지금의 국난을 타개할 명언으로 쓰이기를 기대한다. 명언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절대 진리임을 확인한다.
수필가 김영미 kua348@naver.com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감염된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신조어가 생기면서 반가운 이와 손을 잡는 것조차 꺼려지게 되었다. 될 수 있는 한 집에 머물면서 사람이 모인 곳이면 피해야 감염을 피할수 있단다. 학교와 유치원이 문을 닫고 아이들이 집에 머문 지 오래다.
꽃피는 봄을 온통 잘라먹었으니 오월 들어서는 진정되리라 했다. 확진자가 줄어들면서 이제는 끝이라는 느슨한 생각에 일침을 가하듯 다시 확장세다. 온 국민이 힘들다며 울상이다. 그중에서도 농산물 판로가 막힌 농민들의 속은 타들어간다.
보리를 생산하는 김씨는 살이 확 내렸다. 학교 급식에 납품하던 보리쌀이 학생들이 등교를 하지 않게 되면서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고스란히 남은 보리 가마를 보면서 곧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봄을 났다. 여름이 가까워지는데 여전히 학교는 문을 열지 않고 등교를 하더라도 당분간은 급식은 하지않을 듯하다.
논에서 햇보리는 익는데 걷어 들여도 쟁일 자리가 없다. 햇보리가 나면 창고에 있는 보리는 묵은 보리가 되어 더 팔기가 어렵다. 학교와 계약만 하지 않았다면 서둘러 어찌 처리할 방도를 취해봤을수도 있다.
영양의 균형을 맞춰 키워야하는 학생들이 먹을 것이라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어 눈치만 보다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손해도 손해이지만 아까운 곡식이 제 사용처에 쓰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올해도 보리를 많이 심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속 편하게 그냥 벼를 심고 말 것을 하는 후회도 살짝 든다. 벼는 일부나마 정부수매를 한다. 보리는 수매를 하지 않는다. 전혀 판로를 보장받지 못하게 되면서 농가들은 보리 생산을 중단했다.
키워놓고도 팔수가 없는데 어쩌겠나. 흑보리쌀이라던가, 찰보리같은 고급품을 생산도 해봤지만 소비량은 미미하다. 그나마 학교에 급식을 하게 되면서 판로가 열리는가 했는데 코로나19로 완전히 닫혀버린 것이다.
주부의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루 세끼 밥을 하려니 힘이 든다. 밥을 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보다 식탁에 앉히기는 더 힘들다며 하소연이다. 아이들은 각자 방에 들어 자가 격리를 확실히 하는 중이다.
새벽에 화장실이라도 가다 마주치면 낯이 설어 서로 "헉" 비명을 지를 지경이라며 엄살을 보탠다. 어찌된 것이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진 이후 얼굴 대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방문이라도 열어보면 부스스한 머리와 휑한 눈이 게임캐릭터가 빠져나와 앉았나 싶을 지경이다.
엄마된 의무와 권리로 잔소리라도 할라치면 도리어 자기들도 힘이 든다고 울상이다. 그래. 너희들도 힘이 들겠지! 어른인 나도 미쳐버릴 지경인데 엇부르기 같은 너희들은 오죽하겠니! 전염병은 곧 끝이 날것이고 학교만 가면 잃었던 생활리듬을 찾으리라.
이렇게 속 위안을 삼으며 방문을 닫고 만다. 어서어서 학교만 가게 되기를 바라면서 아침마다 치렀던 등교전쟁도 기쁘게 받아들이리라 다짐을 두는 요즘이다.
집집마다 사정이 이러한데 보리밥이 웬 말이겠나. 차려진 쌀밥도 먹기 귀찮아하면서 간편식인 냉동식품이나 배달음식으로 대충 해결한다.
몸에 해로운줄 알지만 우선 편하고 맛이 있으니 말릴 방법이 없다. 자가 격리의 끝은 또 다른 대란으로 이어질까 걱정이다. 아무래도 갑자기 살이 확 찐 자들이 벌일 다이어트전쟁은 치열할 것 같다. 미리 잡곡밥과 신선한 야채를 먹으면 그런 사태는 막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고통을 아는 법이다.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황금찰보리쌀 학교 급식 납품 중단"이라는 문자 한통이면 되었다. 여기저기서 마음을 모아 주었다.
보릿고개에 먹던 보리밥이 생각난다며 한 포대기, 미숫가루를 만들어 나눌 것이라며 또 한 포대기를 추가한다. 농민 김씨는 이제 햇보리를 걷어 보관할 자리가 생겼다며 한숨을 돌린다. 최소한 학생들의 등교가 시작될 때까지의 시간은 벌었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살리기는 마음먹기에 따라서인가 싶다.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절실한 때다. 이순신 장군이 명랑해전에서 나라를 구했듯 신탁통치의 위기에서 이승만대통령이 국민을 설득했듯이 다시 한 번 지금의 국난을 타개할 명언으로 쓰이기를 기대한다. 명언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절대 진리임을 확인한다.
수필가 김영미 kua348@naver.co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