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진 단편연재소설] 휴식의 서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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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서유진 작성일19-11-20 19:07본문
↑↑ 소설가 서유진사람이 사람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은 눈도 아니고, 지성도 아니며, 오직 마음뿐이다. -마크 트웨인
아내가 밟는다! 밟혔다!
등을 보이고 엎드린 그의 책이 밟혔지만, 비트는 아내의 발바닥! 고의적일까. 그녀도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콩벌레가 된 자신의 껍질 안을 들여다보며 숨을 죽였다. 그는 어쩐지 아내가 자신의 등을 으스러지게 밟는 기분이다. 발에 힘을 주는 짧은 순간에, 종이가 비틀어지다가 찢기기 직전에, 그녀의 고의성이 꼬리를 내린다. 콩벌레는 달아날 궁리에 바쁘다.
얼마나 많이 구해줬나, 서표는 어쩌고. 온갖 모양의 서표를 사 줬건만 그걸 어디 갖다 버리고 날이면 날마다 읽던 책을 뒤집어 방바닥에 엎어놓나. 자기 방에서 책을 읽을 일이지 왜 침실까지 책을. 중얼중얼. 중얼중얼. 쉼 없이 달리는 그가 잠 못 이루는 밤, 질주하는 인생길에도 휴식의 서표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라도 부르면 금방 일어나 일하러 나갈 듯 등을 구부리고, 구부리고, 쪽잠 자는 당신.
그에 대한 아내의 연민이 번개처럼 지나가고 그의 심장에 아! 쏟아지는 소낙비 소리, 양철지붕도 아닌데 따다다다다. 그는 머리를 감싸 안는 척하며 슬그머니 귀를 막았다.
"당신 때문에 편리한 아파트 생활도 청산하고 주택으로 이사 왔는데 여전히, 여전히, 이렇게 밤을 조각조각 나누는가요."
아내는 목이 말랐다. 주방으로 가 칼칼한 목을 차가운 생수로 적시고, 물병을 식탁 위에 딱. 유리판에 유리병이 깨어질 듯 내려놓았다. 유리판에 유리병, 불판에 휘발유. 부(夫)에 부(婦), 깨지는 소리, 불타는 소리, 으르릉 거리는 소리.
쿵.
이 무슨 소리! 육중한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였다.
아내는 입안에 머금은 한 모금의 남은 물을 꼴깍 삼키고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으!"
잘생긴 말 한 마리의 번개 맞은 신음.
그는 간신히 문의 손잡이를 잡고 일어났다.
"그 봐, 내가 뭐랬어."
아내가 고소하다는 듯 팔짱을 낀 채 종알종알 입을 놀린다.
"미끄러졌을 뿐이야."
그는 높은 등을 허공에 세웠다. 아직은 청마의 기상을 잃지 않았다.
"어련하시려고. 그 땀 좀 봐. 당신 정상이 아니야. 병가 내고 종합검진 받으러 가자."
아내는 그리고, 그리고… 하며 뜸을 들였다. 그 이야기를 하려는 거였다.
주택에 이사 와서는 층간 소음도 없는데 그는 역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퇴근 후에는 그가 사는 동네의 골목이란 골목은 다 누비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만이 아니었다. 아랫골목 빌라에까지 아내를 데리고 갔다. 길고양이가 뚫어 놓은 종량제 봉투에서 쓰레기가 터져 나와 흩어져 있었다. 사진을 찍은 후 빌라 문을 두드려 주인을 찾았다. 건물주가 빌라를 관리하지 않자 신축 빌라 앞이 쓰레기 수거 지역처럼 되어버렸다. 그는 건물주가 다른 지방에 살고 세입자만 모여 산다는 것을 알고 집으로 돌아가 컴퓨터로 공고문을 작성했다.
―쾌적하게 삽시다.
―우리는 돼지가 아니며 우리 동네는 돼지우리가 아닙니다.
―정해진 날에 쓰레기를 내놓으세요.
동네 반장 짓을 톡톡히 하는 것으로 끝냈으면 좋을 일이었다고 아내는 생각하며 두 번째 발사할 대포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눈초리 끝이 좁아질 때 십중팔구 그랬다는 것을 그는 지금 막 떠올리며 아내를 바라봤다. 반복의 여왕답게 했던 말을 또 되풀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계속>
소설가 서유진 kua348@naver.com
아내가 밟는다! 밟혔다!
등을 보이고 엎드린 그의 책이 밟혔지만, 비트는 아내의 발바닥! 고의적일까. 그녀도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콩벌레가 된 자신의 껍질 안을 들여다보며 숨을 죽였다. 그는 어쩐지 아내가 자신의 등을 으스러지게 밟는 기분이다. 발에 힘을 주는 짧은 순간에, 종이가 비틀어지다가 찢기기 직전에, 그녀의 고의성이 꼬리를 내린다. 콩벌레는 달아날 궁리에 바쁘다.
얼마나 많이 구해줬나, 서표는 어쩌고. 온갖 모양의 서표를 사 줬건만 그걸 어디 갖다 버리고 날이면 날마다 읽던 책을 뒤집어 방바닥에 엎어놓나. 자기 방에서 책을 읽을 일이지 왜 침실까지 책을. 중얼중얼. 중얼중얼. 쉼 없이 달리는 그가 잠 못 이루는 밤, 질주하는 인생길에도 휴식의 서표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라도 부르면 금방 일어나 일하러 나갈 듯 등을 구부리고, 구부리고, 쪽잠 자는 당신.
그에 대한 아내의 연민이 번개처럼 지나가고 그의 심장에 아! 쏟아지는 소낙비 소리, 양철지붕도 아닌데 따다다다다. 그는 머리를 감싸 안는 척하며 슬그머니 귀를 막았다.
"당신 때문에 편리한 아파트 생활도 청산하고 주택으로 이사 왔는데 여전히, 여전히, 이렇게 밤을 조각조각 나누는가요."
아내는 목이 말랐다. 주방으로 가 칼칼한 목을 차가운 생수로 적시고, 물병을 식탁 위에 딱. 유리판에 유리병이 깨어질 듯 내려놓았다. 유리판에 유리병, 불판에 휘발유. 부(夫)에 부(婦), 깨지는 소리, 불타는 소리, 으르릉 거리는 소리.
쿵.
이 무슨 소리! 육중한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였다.
아내는 입안에 머금은 한 모금의 남은 물을 꼴깍 삼키고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으!"
잘생긴 말 한 마리의 번개 맞은 신음.
그는 간신히 문의 손잡이를 잡고 일어났다.
"그 봐, 내가 뭐랬어."
아내가 고소하다는 듯 팔짱을 낀 채 종알종알 입을 놀린다.
"미끄러졌을 뿐이야."
그는 높은 등을 허공에 세웠다. 아직은 청마의 기상을 잃지 않았다.
"어련하시려고. 그 땀 좀 봐. 당신 정상이 아니야. 병가 내고 종합검진 받으러 가자."
아내는 그리고, 그리고… 하며 뜸을 들였다. 그 이야기를 하려는 거였다.
주택에 이사 와서는 층간 소음도 없는데 그는 역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퇴근 후에는 그가 사는 동네의 골목이란 골목은 다 누비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만이 아니었다. 아랫골목 빌라에까지 아내를 데리고 갔다. 길고양이가 뚫어 놓은 종량제 봉투에서 쓰레기가 터져 나와 흩어져 있었다. 사진을 찍은 후 빌라 문을 두드려 주인을 찾았다. 건물주가 빌라를 관리하지 않자 신축 빌라 앞이 쓰레기 수거 지역처럼 되어버렸다. 그는 건물주가 다른 지방에 살고 세입자만 모여 산다는 것을 알고 집으로 돌아가 컴퓨터로 공고문을 작성했다.
―쾌적하게 삽시다.
―우리는 돼지가 아니며 우리 동네는 돼지우리가 아닙니다.
―정해진 날에 쓰레기를 내놓으세요.
동네 반장 짓을 톡톡히 하는 것으로 끝냈으면 좋을 일이었다고 아내는 생각하며 두 번째 발사할 대포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눈초리 끝이 좁아질 때 십중팔구 그랬다는 것을 그는 지금 막 떠올리며 아내를 바라봤다. 반복의 여왕답게 했던 말을 또 되풀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계속>
소설가 서유진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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