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진 단편연재소설] 휴식의 서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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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서유진 작성일19-11-17 17:36본문
↑↑ 소설가 서유진수면은 피로한 마음의 가장 좋은 약이다. -세르반테스
그가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 아내의 옆자리에 누웠을 때는 3시에서 3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잠들기 위해 몸을 뒤척였지만 상념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어떤 일이든 순리대로 해야 한다고, 그놈의 강의도 되는대로 하라고, 녀석에게 연락이 올 때까지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정말 잠을 자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근했다.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당겼다. 녀석의 어머니가 대신 죄를 뒤집어쓸 수 있을까. 믿어줄까. 그 아버지는 어찌 되었을까.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는 배 위에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기도를 하려는데 다시 섬광이 시작되었다. 찬란한 빛의 입자가 눈꽃처럼 분분히 흩날렸다. 빛, 그 빛을 두 손으로 모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는 고아와 과부를 버려두지 말라고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제발, 자자. 내일을 위해서. 지금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플라테르는 '프락세오스 트락타투스*실천적 논의'에 정신의 고갈이 습관적 밤샘과 불면증을 낳는다고 했지. 정신의 고갈, 고갈이다. 내가 왜 고갈되었단 말인가? 그는 섬광이 멈추길 기다렸지만 수백 개의 빛은 폭죽을 터뜨리며 눈앞에서 떨어져 내렸다. 결국 그는 잠을 포기하고 눈을 떴다. 독서등을 켜고, 책을 읽다 잠드는 요행을 바라면서 잠 잘 오는 책을 고르느라 부스럭 부스럭.
"아! 내가 미쳐!"
벌떡 일어나 앉는 아내는 아마도 지금까지 덮어쓴 이불속에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머릿속으로 더듬으며 내내 참고 있었는지 모른다. 지난날의 강을 건너는 아내의 지청구가 첨벙첨벙 그의 귀에 아득하게 울려 퍼졌다. 아파트 위층에서 마룻바닥을 굴러대는 소음 때문에 미친 듯 올라가 벨을 누르고 격한 말다툼을 하고 내려오는 그의 신경증 때문에―층간소음은 신경증이 없는 아내에게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이지만―아내는 위층 새댁에게 자주, 자주, 자주, 머리를 조아렸다.
"저이가 잠을 못 자서… 미안해요, 저러다가 과로에…."
불면에 시달린 그의 초췌한 얼굴을 떠올리며 아내가 시큰둥한 여자에게 죄지은 사람 모양 말했다.
"그리 심하게 마루를 쿵쿵거리며 뛴 것도 아니고 소음 흡수용 매트도 깔아 두었는데 너무 과민한 거 아니에요?"
여자가 대책 없다는 듯 머리를 살레 살레.
아내는 여자를 도깨비방망이로 콩 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주택으로 이사 오지 말걸. 어차피 못 잘 바에야. 나만이라도 편리한 아파트에 살 수 있었는데, 흐 후 흐 후."
그는 아내의 화 덩어리 삼키는 소리가 저돌적으로 들렸다.
"섬광이 자꾸… 잘 수가 없어."
"괜찮아. 피로하면 보인대. 그러니까 일을 좀 줄이면 좋잖아."
"괜찮기는. 더 심해진 걸. 일은 또 어떻게 줄여. 내가 해야 할 일을 누구에게 맡기라고."
"그럼, 어쩌라고. 나더러 어쩌라고."
과로사해서 저를 과부 만들 거냐며 아내는 잠긴 목소리로 말하고는 끄응, 엉덩이를 들고 침대 밑으로 다리를 내렸다. 어둑한 방, 흐린 조명등에 어른거리는 책들, 이것이 자기 부부의 현실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차라리 캄캄하다면 포기하지. 눈 질끈 감고 되는대로 망망대해의 밤을 표류할 수도 있었다. <계속>
소설가 서유진 kua348@naver.com
그가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 아내의 옆자리에 누웠을 때는 3시에서 3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잠들기 위해 몸을 뒤척였지만 상념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어떤 일이든 순리대로 해야 한다고, 그놈의 강의도 되는대로 하라고, 녀석에게 연락이 올 때까지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정말 잠을 자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근했다.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당겼다. 녀석의 어머니가 대신 죄를 뒤집어쓸 수 있을까. 믿어줄까. 그 아버지는 어찌 되었을까.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는 배 위에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기도를 하려는데 다시 섬광이 시작되었다. 찬란한 빛의 입자가 눈꽃처럼 분분히 흩날렸다. 빛, 그 빛을 두 손으로 모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는 고아와 과부를 버려두지 말라고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제발, 자자. 내일을 위해서. 지금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플라테르는 '프락세오스 트락타투스*실천적 논의'에 정신의 고갈이 습관적 밤샘과 불면증을 낳는다고 했지. 정신의 고갈, 고갈이다. 내가 왜 고갈되었단 말인가? 그는 섬광이 멈추길 기다렸지만 수백 개의 빛은 폭죽을 터뜨리며 눈앞에서 떨어져 내렸다. 결국 그는 잠을 포기하고 눈을 떴다. 독서등을 켜고, 책을 읽다 잠드는 요행을 바라면서 잠 잘 오는 책을 고르느라 부스럭 부스럭.
"아! 내가 미쳐!"
벌떡 일어나 앉는 아내는 아마도 지금까지 덮어쓴 이불속에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머릿속으로 더듬으며 내내 참고 있었는지 모른다. 지난날의 강을 건너는 아내의 지청구가 첨벙첨벙 그의 귀에 아득하게 울려 퍼졌다. 아파트 위층에서 마룻바닥을 굴러대는 소음 때문에 미친 듯 올라가 벨을 누르고 격한 말다툼을 하고 내려오는 그의 신경증 때문에―층간소음은 신경증이 없는 아내에게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이지만―아내는 위층 새댁에게 자주, 자주, 자주, 머리를 조아렸다.
"저이가 잠을 못 자서… 미안해요, 저러다가 과로에…."
불면에 시달린 그의 초췌한 얼굴을 떠올리며 아내가 시큰둥한 여자에게 죄지은 사람 모양 말했다.
"그리 심하게 마루를 쿵쿵거리며 뛴 것도 아니고 소음 흡수용 매트도 깔아 두었는데 너무 과민한 거 아니에요?"
여자가 대책 없다는 듯 머리를 살레 살레.
아내는 여자를 도깨비방망이로 콩 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주택으로 이사 오지 말걸. 어차피 못 잘 바에야. 나만이라도 편리한 아파트에 살 수 있었는데, 흐 후 흐 후."
그는 아내의 화 덩어리 삼키는 소리가 저돌적으로 들렸다.
"섬광이 자꾸… 잘 수가 없어."
"괜찮아. 피로하면 보인대. 그러니까 일을 좀 줄이면 좋잖아."
"괜찮기는. 더 심해진 걸. 일은 또 어떻게 줄여. 내가 해야 할 일을 누구에게 맡기라고."
"그럼, 어쩌라고. 나더러 어쩌라고."
과로사해서 저를 과부 만들 거냐며 아내는 잠긴 목소리로 말하고는 끄응, 엉덩이를 들고 침대 밑으로 다리를 내렸다. 어둑한 방, 흐린 조명등에 어른거리는 책들, 이것이 자기 부부의 현실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차라리 캄캄하다면 포기하지. 눈 질끈 감고 되는대로 망망대해의 밤을 표류할 수도 있었다. <계속>
소설가 서유진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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