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관 기고] 인성(人性)과 수심(獸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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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탈영상복원전문가 고영관 작성일19-10-23 18:41본문
↑↑ 디지탈영상복원전문가 고영관동서고금을 통해 부당한 위정자에 저항하기 위해 군중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례는 많았다. 그러나 단지 임명직에 불과한 국무위원 한 사람의 진퇴 문제를 놓고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거나 모여드는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있을는지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일은 반드시 시작과 끝이 있게 마련이고, 사람은 누구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좀 더 버티어 보지 않고'라는 말은 하지 말라. 밀물은 달(moon)의 인력에 끌려 들어오지만 밀물이 썰물로 바뀌는 것 또한 자연의 섭리일뿐, 그 누구의 의지로도 막을 수 있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밀물이 많은 것을 몰고 오고, 썰물 후에 갯가에 가져온 것들의 모습을 들어 내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이제 우리사회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의 실체를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간 기득권이 쌓아온 벽이 얼마나 높고 견고한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페니실린'이 발명되기 전 까지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생명체 박테리아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도 속수무책이었지만, 우연히 쓸모없던 푸른곰팡이가 박테리아를 박멸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항생제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 아닌가? 모든 질병은 정확한 진단이 우선이다. 이번 사태로 현재 우리사회 병폐의 원인이 무엇인지 확진을 했으니, 이제 모두가 치료 방법을 찾으면 될 일이지, 아무것도 설왕설래할 일은 없을 것이다.
입으로만 먹고사는 사람들이 아무리 입방아를 찧어도 되돌릴 수 없는 명백한 사실, 부패한 사법기관은 개혁되어야 하고, 우리사회를 둘로 나누기 위해 혈안이 된 정치인들은 퇴출되어야 할 것이며, 높디높은 기득권의 벽도 허물어져야 한다.
절대 다수라고 해서 소수의 희생을 강요할 수 없고, 모든 사람을 위해 어느 한 사람도 재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인데, 그것은 어느 누구도 자신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강요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의든 타의든 특이한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이 '몰모트'가 되어 얻어진 이 귀중한 결과가 우리사회의 해묵은 지병을 치유케 할 희망을 던져 준 것이 아닐까?
어떤 경우라도 임명된 권력이 선출된 권력 위에 있을 수 없고, 어떤 권력도 그 권력을 위임해준 주권자의 위에 있지 않다는 말을 또 되풀이할 필요가 있을까? 민주독재라는 말이 형용모순이듯이 무소불위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모순이다.
행하지 아니하면 무능하고, 행하면 독재인가? 좌파독재라는 말 역시 성립될 수 없는 언어의 희롱일 뿐, 좌파가 독재라면 좌파를 독재라고 비판할 우파가 존재할 자리가 없고, 피임명자가 임명자에게 항명할 도리도 없으며,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와 경찰의 진압이 아닌 보호아래 집회를 가질 수가 없고, 그것이 거짓이든 참이든 언론이 마음 내키는 대로 그런 기사를 쓸 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정상과 불공정이 당연한 관행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정상적인 사고(思考)행위 자체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장님 손에 등불은 별무소용이고, 개, 돼지 밥그릇에 진주는 썩은 고기 한 점만도 못하다. 많은 사람들을 장님으로 만들었고 스스로도 장님이 되어버린 사람들, 그들은 누구일까? 실명하여 볼 수 없는 사람들은 투쟁의 대상이 아니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잃어버린 시력을 회복시켜 주는 시술이다. 발암물질이 든 음식을 판매하는 사람도 나쁘지만, 인간의 정신을 오염시켜 병들게 한 저 죄악을 차마 어찌할 것인가?
'인간과 동물은 미미한 차이가 있을 뿐이고, 대부분의 인간은 그 차이조차 없다'고 한 '공자(孔子)'의 말이 다시금 생각나는 요즘이다. 좌파 우파, 진보 보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우리 모두가 사람과 동물의 그 미미한 차이부터 먼저 좀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디지탈영상복원전문가 고영관 kua348@naver.com
그러나 밀물이 많은 것을 몰고 오고, 썰물 후에 갯가에 가져온 것들의 모습을 들어 내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이제 우리사회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의 실체를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간 기득권이 쌓아온 벽이 얼마나 높고 견고한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페니실린'이 발명되기 전 까지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생명체 박테리아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도 속수무책이었지만, 우연히 쓸모없던 푸른곰팡이가 박테리아를 박멸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항생제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 아닌가? 모든 질병은 정확한 진단이 우선이다. 이번 사태로 현재 우리사회 병폐의 원인이 무엇인지 확진을 했으니, 이제 모두가 치료 방법을 찾으면 될 일이지, 아무것도 설왕설래할 일은 없을 것이다.
입으로만 먹고사는 사람들이 아무리 입방아를 찧어도 되돌릴 수 없는 명백한 사실, 부패한 사법기관은 개혁되어야 하고, 우리사회를 둘로 나누기 위해 혈안이 된 정치인들은 퇴출되어야 할 것이며, 높디높은 기득권의 벽도 허물어져야 한다.
절대 다수라고 해서 소수의 희생을 강요할 수 없고, 모든 사람을 위해 어느 한 사람도 재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인데, 그것은 어느 누구도 자신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강요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의든 타의든 특이한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이 '몰모트'가 되어 얻어진 이 귀중한 결과가 우리사회의 해묵은 지병을 치유케 할 희망을 던져 준 것이 아닐까?
어떤 경우라도 임명된 권력이 선출된 권력 위에 있을 수 없고, 어떤 권력도 그 권력을 위임해준 주권자의 위에 있지 않다는 말을 또 되풀이할 필요가 있을까? 민주독재라는 말이 형용모순이듯이 무소불위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모순이다.
행하지 아니하면 무능하고, 행하면 독재인가? 좌파독재라는 말 역시 성립될 수 없는 언어의 희롱일 뿐, 좌파가 독재라면 좌파를 독재라고 비판할 우파가 존재할 자리가 없고, 피임명자가 임명자에게 항명할 도리도 없으며,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와 경찰의 진압이 아닌 보호아래 집회를 가질 수가 없고, 그것이 거짓이든 참이든 언론이 마음 내키는 대로 그런 기사를 쓸 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정상과 불공정이 당연한 관행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정상적인 사고(思考)행위 자체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장님 손에 등불은 별무소용이고, 개, 돼지 밥그릇에 진주는 썩은 고기 한 점만도 못하다. 많은 사람들을 장님으로 만들었고 스스로도 장님이 되어버린 사람들, 그들은 누구일까? 실명하여 볼 수 없는 사람들은 투쟁의 대상이 아니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잃어버린 시력을 회복시켜 주는 시술이다. 발암물질이 든 음식을 판매하는 사람도 나쁘지만, 인간의 정신을 오염시켜 병들게 한 저 죄악을 차마 어찌할 것인가?
'인간과 동물은 미미한 차이가 있을 뿐이고, 대부분의 인간은 그 차이조차 없다'고 한 '공자(孔子)'의 말이 다시금 생각나는 요즘이다. 좌파 우파, 진보 보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우리 모두가 사람과 동물의 그 미미한 차이부터 먼저 좀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디지탈영상복원전문가 고영관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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