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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경북 이야기보따리 수기 공모전 낯선 길 발자국 녹이는 따스한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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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재 작성일19-10-20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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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신문=장성재기자] ◆ 동상 = 장 미 자
 
  5박6일 나 홀로 블루로드
 
  걷고 싶었다. 단지 이것뿐이었다. 내가 서 있지 않았던 길 위에, 내가 가보지 못했던 길 위에, 내가 어쩌면 다시 갈 수 없는 그런 길 위에 나를 세우고 싶었다. 장마가 오기 전에 피서객들이 곳마다 분주해지기 전에 퍼뜩 걷고 싶었다.

  나는 동해안을 택했다. 부산인 이곳에서 울진까진 버스를 타고 간 후, 딱 포항까지만 블루로드를 타고 도보로 내려올 작정이었다. 도보여행 코스를 이쪽을 택한 데는 전부터 울진에 사는 지인이 블루로드 자랑을 귀에 딱지가 않도록 했던 이유였다.

  뙤약볕이 내리 쬐는 6월 말의 여름, 도보여행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친 나는 집을 나서 경주로 달렸다. 그리고 다시 버스를 갈아 탄 후 울진으로 갔다. 터미널엔 이미 울진에 사는 지인(울진댁이라 부른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울진댁이 가장 먼저 나를 안내한 곳은 곰치국(물곰국)을 파는 식당이었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는데 전날 술을 먹지 않았음에도 속이 뻥 뚫리는 듯 정말 시원한 맛이었다. 곰치국을 먹고 난 후 울진댁과 아이스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루 울진에서 묵고 가라며 만류했지만 한사코 서운한 손길을 뿌리치며 서둘렀다. 걷고 싶었으므로. 빨리 오롯한 내가 되고 싶었으므로.

  널찍한 도로를 따라 걸었다. 부산 이 대도시와는 다르게 역시나 차도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산했다. 게다가 이제 더위가 막 시작된 여름이었으니 배낭을 메고 걷고 있는 사람은 거의 나 혼자뿐인 듯 했다.

  그런데 갑자기 흐려지는 하늘, 금세라도 굵은 빗줄기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미처 우의를 준비하지 못했기에 적잖이 걱정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달리 방법은 없었다. 어쩌나 하며 걱정을 하고 있는 그 때, 전화가 왔다. 바로 울진댁이었다. 비가 올 것 같으니 우의를 사서 지금 바로 내가 있는 위치로 차를 몰고 온다는 거였다.

  몇 분 후, 울진댁 차가 내 앞으로 와서 멈췄다. 코끝이 찡할 정도의 고마움이었다. 울진댁은 비도 올 것 같고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울진에서 비 그칠 때까진 좀 머물다 가라했다. 그리곤 울진 곳곳을 소개해 준다며 나를 차에 태웠다.

  우산을 같이 쓰고 싱싱한 자연내음 그대로 풍기는 불영계곡을 들러 바다 비린 냄새가 허기처럼 풍겨오는 후포리를 거쳐 우리 둘은 외진 바닷가 모퉁이를 거닐었다. 부산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청량한 바람과 공기, 또한 한가하고 여유로운 호흡. 그리고 마치 애인 같이 사랑스런 울진댁. 얼마 뒤 울진댁은 영덕 가까운 곳까지 나를 차로 데려다 주었다. 여기서부터 걸어가는 게 좋을 거라며.

  한참을 걷다 보니 드디어 영덕 블루로드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걷힐 뜻이 전혀 없어 보이는 해무 낀 바다를 옆으로 하고서 그저 걸을 뿐. 도착 시간 따위 정해 두지 않고 마냥 걷기만 할 뿐. 발 옆으로 지나치는 이름도 모를 키 낮은 들꽃들이 내게 말을 하는 듯했다. 

  너의 걸음을 허락한다. 너의 시간을 허락한다. 치장한 눈물을 거부하고 입력된 이름을 지우며 오직 세상이 무심한 너 만을 나의 호흡, 나의 독백 속에 허락 한다. 그러니 빈 몸으로 서성이다 가라. 다만 바람으로 걷고 걷다 돌아가라.

  발바닥이 아프도록 쉬지 않고 걸었다. 배에서는 꼬르륵 밥 달라는 소리가 아까부터 요란했다. 하지만 드문드문 집들이야 저만치 보였어도 밥 한 끼 때울 식당은 좀체 보이지 않았다.

  무려 걸은 지 네 시간 만에야 자그마한 분식집이 나타났다. 김밥 한 줄과 라면 한 그릇. 너무도 친절하신 주인아주머니의 배려에 이따가 먹으려고 아껴둔 아메리카노 캔 커피를 드렸다. 사람의 인정이란 친한 사이에서는 때로 그러려니 무뎌지고 상실 되는 법. 처음 보는 여행객의 선물에 주인아주머니 얼굴에선 해당화 같은 꽃이 피어났다.

  그리고 드디어 펜션 숙소다. 경북에서의 첫 펜션 입실을 기념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혼자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지 않으면, 얼굴 외엔 제 몸 하나 온전히 사진에 담을 수 없는 것. 결국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찍는 수밖에. 그래도 괜찮다. 이렇게라도 내 모습을 찍을 수 있는 것이다. 하여 얼마든 이 세상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마음먹기에 따라 그다지 힘들거나 어렵지 않다는 것.

  다음 날, 나는 또 걷는다. 블루로드 해안 길을 따라 걷고 걷는다. 걷는 일 외엔 딱히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여행.

  바다는 여전히 해무로 가득했다.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다고, 섬이 보이지 않는다고 곁을 지나며 투덜대는 사람 몇. 지금 바다는 어제 왔다간 연인들의 이별을 수장 중이다. 지금 바다는 셋방으로 내놓은 섬, 새로 올 사람을 위해 도배중이다. 그러니 사람들이여 잠시 고요 하라. 너희들도 누군가의 눈물 낀 슬픔을 어루만지고 너희들도 누군가를 위해 내 가슴 반 평 기꺼이 내 놓을 수 있다면.

  나는 잠시 또 생각했다. 불빛도 없는 나의 귀소를 염두 해 두지 않고, 저기 저 훨훨 갈매기의 몸짓으로나 살고 싶다고. 녹슨 눈동자를 말갛게 닦아 내며, 애달픈 곡조를 푸르게 산화시키며.

  걸은 지 3일 만에 발가락엔 온통 물집이 생겨버렸다. 양말을 더 두꺼운 걸로 준비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으나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펜션에서 잠들기 전에 바늘로 물집을 터트려 실을 끼워 넣고, 아침에 다시 걸을 땐 밴드로 칠갑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걷다 쉬고 쉬다 걷고 하며 며칠 동안 고래불해수욕장, 풍력발전단지, 해맞이 공원 등을 지나 드디어 그 유명한 강구항에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대게 찌는 구수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서로들 자기네 집으로 들어오라 손짓하고 있었지만, 여자 혼자 앉아 우적우적 대게를 뜯어 먹는다는 것은, 여자 혼자 순댓국을 먹는 일보다 사실 더 힘든 일이 아니겠는가. 군침을 뚝뚝 흘리며 나는 발길을 앞으로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대게의 본고장인 여기까지 왔는데 저 맛있는 대게 맛도 보지 않고 간다는 건 무언가 엄청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해서 두리번거리다 그나마 한적하고 작은 어느 식당으로 들어갔다. 나는 부산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대게된장찌개를 주문했다.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대게 다리가 들어간 된장찌개가 나왔다. 이것도 대게는 대게니까 만족하며 먹자싶어 후루룩 된장국물을 들이켜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커다란 대게 반 마리 올린 접시를 들고 내 자리로 왔다.

  "저는 그거 안 시켰는데요?"

  "보아하니 혼자서 여행을 하는가 봅니더. 이건 우리 아저씨랑 먹을라꼬 방금 찐 건데 맛이나 보소. 어딜 가도 이런 게는 못 먹지. 맛이 아주 죽이니더."

  "아, 정말 감사합니다. 잘 먹을 게요."

  이리하여 나는 공짜로 대게를 얻어먹게 된 것이었다. 맛이야 두 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훌륭했다. 그보다 더 나를 감동이게 한 것은 주인아주머니였다. 본인들 먹을 대게를 낯선 이에게 선뜻 내어 줄 수 있는 인정!

며칠 전 분식집 주인아주머니도 내가 건네준 캔 커피를 받아들곤 이런 느낌이 들었을까? 아무튼 나는 아마도 앞으로 대게 하면 가장 먼저 이 대게를 떠올릴 것이다.

  마침내 저 멀리 포항시라고 적힌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포항터미널 도착하기 전에 부산으로 오는 버스가 서는 간이정거장이 있었으나 나는 한사코 십여 킬로미터를 더 걸어 포항터미널에 도착했다. 이로써 장장 5박6일 100킬로미터가 넘는 나 홀로 도보여행은 끝이 난 것이었다.

  부산행 버스 안에서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제 다시 나는 길 위에 서야 하겠지. 다리가 아프면 쉬었다가도 가고 갈증이 일면 누군가에게 물 한 모금도 얻어먹어야 하겠지. 더러 물집 잡히듯 생의 곡절이 찾아들면 겁먹지 말고 터뜨려 내일을 또 맞이해야 한다. 이렇게 낯선 길 위에 섰듯 그래 나는, 결코 순탄치 않은 삶일지언정 앞만 보며 쉼 없이 걸어가야 한다.

  여행을 마친 동해의 블루로드는 배낭 속에서 스르르 잠이 들고 있었다.
 
  ◆ 동상 = 공 대 원
 
  명예보다 진실이 효도다 - 의성 빙계서원을 다녀와서
 
  여행을 하는 것은 요즘 말로 '힐링'이라고들 합니다. 편안한 휴식으로 다음의 행보를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젊을 때는 맞는 말이지만 부모가 되면 여행의 목적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자주 하지 못하는 여행이라 한번 가면 뭐라도 배우고 깨달음을 가지는 여행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남쪽 도시, 경남 사천 바닷가에 사는 저는 어쩐지 여행은 북쪽 도시로 가게 됩니다. 아이들도 가고 싶어 하는 도시는 북쪽이지요. 꼭 대도시가 아니어도 찾아 간, 그 도시 안에서 저는 서원이나 향교 같은 곳을 꼭 들립니다. 물론 아이들은 싫어합니다. 도시에서 떨어진 장소, 낡은 건물, 볼 게 없고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가고 싶다거나 보고 싶다는 것 먹고 싶다는 것을 한 다음에는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따라옵니다. 아직은 고등학생, 중학생 학생들이라서 부모의 말을 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스무 살이 넘으면 자기 친구들과 가는 여행을 좋아할 테니까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번에 다녀 온 곳은 경북 군위와 의성입니다. 아내와 딸이 흠뻑 빠진 TV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여자주인공이 찍었다는 영화 촬영지가 목적지 였습니다.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 군위에서는 주인공이 살던 집과 그녀의 자전거도 탔습니다. 사실 저는 '리틀 포레스트'라는 이름만 듣고, 외국 배우가 나온 '포레스트검프'라는 영화를 생각했지요. 다음으로는 의성 산수유 마을이었습니다. 그 곳도 영화 촬영지라고 가족들이 모두 좋아했지만 저는 아직도 마늘닭 맛이 기억납니다.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것은 '삼미마늘닭'이었기에 메뉴가 닭뿐인 단촌면 식당을 찾아 갔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봤던 것이라며 좋아하는 아이들은 남은 통닭 국물에 밥까지 말아 먹었습니다. 사실 저는 너무 잘 먹었지요.

  다음이 제가 가 보고 싶었던 '빙계서원'이었습니다.

  "또야?"

  "그렇지 그럼 그냥 지나갈 분이 아니시지!"

  아이들이 투덜거림에

  "당신 전생에 선비였나 봐!"

  아내의 구박까지 들었지만 '소귀에 경 읽기' 라고, 저는 당당히 차를 몰았습니다.

  빙계서원에 대해 아는 바는 많이 없습니다. 의성에서 서원과 향교를 찾다가 정한 곳이었습니다. 각 지방의 교육을 담당했던 곳이 서원이지만 특히 '빙계서원'은 조선시대 학자였던 '모재 김안국'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는 것을 알고는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기묘사화에 연루된 적 있는 김안국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그가 아들에게 '명예가 아닌 진실을 따라서 살면 그게 바로 효도다.'라는 말을 했다는 것을 알 뿐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효도에 관해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지만, 부모에게 근심을 주지 않으려 살아 왔기에 바르게 사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효도' 였습니다. 

  빙계서원은 김안국, 이언적을 시작으로 숙종 때, 김일성, 류성룡, 장현광까지 모두 다섯 분. 오현(五賢)을 모신 곳이었습니다. 아이들도 알고 있는 이름인 '이황'께서 이언적의 성리학을 계승 했다는 말을 듣고서야 아이들은 '이제 아는 이름 하나 나왔다.'고 했지만 관심있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흥선대원군이 서원을 철폐시킬 때까지 지역의 교육을 담당했던 곳이라는 향기가 나는 곳이었습니다. 멀리서 서원의 지붕을 볼 때부터 가슴이 뛰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효도에 대해 이야기 해 주고, 명예보다 진실 되게 살자는 마음을 어떻게 잘 전달 할지 궁리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마주 선 입구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습니다. 차분하고 믿음직한 기둥의 '빙월루(氷月樓)' 세 글자를 보자마자 가슴이 뛰었습니다. 어서 오라고 잘 왔다고 기다렸다고 말해 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효도 해 달라고 바라지는 않았지만 먼 후일 우리가 없어도 세상을 진실 되게 살면 어려운 일 없을 거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오래 된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았습니다.    

  여행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도 맞고, 가고 싶은 곳만 가는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다닐 수 있을 때, 과거의 유산이라고 하기 엔 거창 하지만 서원을 가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 대원군 알어!'

  라거나

  '류성룡? 이순신에 나오는 그 류성룡?'

  하는 아이들이지만, 그 류성룡 선생이 의성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만 듣고도 의성에 온 것을 잘 했다고 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언제 다시 두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류성룡을 알고 김안국의 효도를 배워 가는 것이 저는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아직 못 가본 서원이 많으니 다음에도 아이들 모르게 잘 찾아보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싫어해도 돌아 나올 땐 고개를 끄득이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입니다.
장성재   blowpa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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