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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문무대왕 수중릉… 호국정신이 깃든 `봉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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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작성일20-10-28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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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길리 전경.   
[경북신문=김영식기자] 양북면 봉길리(奉吉里)는 사적 제158호 문무대왕릉이 있는 마을이다. 봉길리에서 불과 200여 m 떨어진 바닷가에 있는 문무대왕릉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수중왕릉이다.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은 지의법사에게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불교식으로 화장을 하고 유골을 동해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했다. 그러면 동해의 용이 되어 국가를 평안하게 지키겠다고 했다.

                    ↑↑ 문무대왕 수중왕릉.   
  설화에 따르면 문무왕이 그 아들 신문왕에게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주면서 자신이 죽은 후 이 피리를 불면 용이 나타나 국가의 안위를 지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신문왕은 바다에서 1.5㎞ 떨어진 현재의 용당리에 부왕을 기리는 감은사를 지어 절의 금당 밑으로 바닷물이 들어오도록 설계했다. 용이 쉽게 접근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지금의 대본리에 이견대를 지어 이곳에 수시로 와서 부왕을 망배했다고 한다.

                      ↑↑ 건어물을 파는 노점. 봉길리의 주민들은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건어물을 판매해 용돈을 벌어쓰기도 한다.   
  봉길리 주민들은 신라 호국정신의 뿌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김석철 전 이장은 "우리 마을 사람들은 문무대왕의 호국정신이 서린 문무대왕릉을 보유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며 "국내외의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을 때마다 이 자랑스러운 유적을 크게 홍보하고 잘 보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봉길해수욕장 입구에 형성되고 있는 현대식 카페들.   
  봉길리는 185가구 317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비교적 규모가 큰 마을이다. 상봉, 하봉, 수제마을 등 3개 자연마을로 구성된 이 마을은 월성원자력본부가 건설되면서 하봉마을이 편입됐고 원자력환경공단이 들어서면서 상봉마을도 편입돼 사실상 수제마을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하봉과 상봉마을 사람들은 수제마을로 이주해 정착했다. 수제마을은 문무대왕릉이 있는 마을이며 조선시대 가뭄이 심할 때 제단을 설치해 기우제를 지냈다고 해서 수제(水祭)라고 불렀다고 한다.

                      ↑↑ 봉길해수욕장의 상점들.   
  봉길리 사람들은 주로 농업과 어업을 겸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월성원자력본부와 원자력환경공단이 들어서면서 농토가 편입돼 보상받은 돈으로 인근 마을의 농토를 매입해 농사를 짓기는 했으나 대부분 소농가로 전락한 상태다. 그리고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봉길리 바닷가에 방파제가 없어 지금까지 감포항으로 가서 고기잡이를 한다.

                      ↑↑ 대종천 하류를 끼고 형성된 복합상가.   
  봉길리의 큰 자랑은 대종천 하류의 천혜의 백사장을 가지고 있는 봉길해수욕장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여름철에는 해수욕장을 찾는 피서객이, 봄과 가을에는 문무대왕릉을 찾는 관광객의 버스가 넘쳐났다. 그러나 원자력환경공단이 들어서고 나서는 피서객이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문무대왕릉을 찾는 관광객들도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피서객과 관광객을 상대하기 위해 생겨났던 횟집들도 외지에서 찾는 이들이 줄어들면서 수입도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

                      ↑↑ 봉길해수욕장의 백사장.   
  봉길리를 호국의 성지로 만들어 국내외 관광객들을 수용하기 위한 종합 정비계획은 경주시가 마련하고 있다. 경주시는 감포읍·양북면 일대 해양관광산업 육성을 위해 문무대왕릉 성역화 등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신라의 동해 관문이자 해양영토 수호 염원이 담긴 문무대왕릉이 갖고 있는 역사·문화적 배경을 토대로 해양문화 상징화, 콘텐츠 개발, 문무대왕릉 성역화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 사업이 완성된다면 봉길리가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희망을 걸고 있다.

                      ↑↑ 봉길리 수제마을의 오래된 농촌 모습.   
  봉길리의 최고령자는 김화백(92) 할아버지다. 김 할아버지는 "이 마을이 한참 잘 살 때는 약 300가구가 살 정도로 번창했지만 지금은 절반으로 줄어들어 아쉽다"며 "지금은 횟집이 10여곳으로 그나마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 봉길리의 최고령자 김화백 할아버지.   
  김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놈들 때문에 살기가 어려웠지만 해방 된 후 고기 잡고 농사지으며 배불리 먹게 돼 살기가 좋아졌다"며 "하루빨리 봉길리에 다시 관광객이 몰려와 마을사람들의 수입이 올라가면 좋겠다"고 했다.

  월성원전의 자매부서는 재난환경부다. 한지학 소방대장은 "호국정신이 깃든 봉길리가 하루빨리 정상적으로 경주의 대표적인 해양관광지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며 "주민들의 생활이 나아질 수 있도록 자매부서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도와가겠다"고 말했다. 
김영식   74949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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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