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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부터 천석꾼 있던 소문난 넉넉한 인심 `입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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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작성일20-10-2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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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천리 전경.   
[경북신문=김영식기자] 양북면 입천리(卄川里)의 입(卄)자는 스물(20)이라는 뜻이다. 마을로 흐르는 내가 스무개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형제봉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마을로 흘러 거미줄처럼 뻗어나간 것이다. 그러나 내는 많지만 땅 밑 수위가 낮아 금방 물이 말라버리는 건천도 많다. 그래서 옛날에는 논농사보다 밭농사를 짓는 집이 많았다.

  그러나 제방을 쌓기 전까지 여름철이면 마을 앞으로 흐르는 대종천이 쉽게 범람했고 마을이 고립되는 경우도 있었다. 1960년대까지 이 마을에서는 수림과 방천 조성을 위해 조림계(造林契)를 만들어 치수에 신경을 많이 썼다. 1970년대 입천교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큰물이 지면 교통이 두절되는 경우가 일쑤였다. 그래서 학교를 가는 학생들은 어른들이 업어서 강을 건네주기도 했고 물이 많이 불어나면 아예 등교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 입천리 정철교 이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마을 주민과 들녘에서 농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입천리는 효동, 지저, 포구정, 시무내 등 4개 마을로 구성됐으며 124가구에 25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 가운데 50대 이하의 주민이 약 40명 정도가 돼 다른 마을에 비해 비교적 젊은 마을로 통한다. 그래서인지 입천리 청년회는 다른 마을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매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 포은 정몽주의 후손들을 기리는 원모재.   

  입천리의 토질은 바다가 융기되면서 생성된 지오라이트 광맥이 송전리까지 이어져 매우 윤택하기로 소문나 있다. 지오라이트는 토양개량제로 사용되는 흙이며 입천리 대종천의 풍부한 물과 어울려 문전옥답을 이룬다. 그래서 100년 전부터 천석꾼이 있었을 정도로 부촌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마을보다 잘 사는 마을이어서 그런지 전기도 양북면에서 어일리에 이어 두 번째로 빨리 들어왔다.

  벼농사가 주요작물이었던 입천리는 최근 들어 토마토와 부추 등 고소득 작물 농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 중 토마토 농가는 10가구 정도가 평균 1000평씩 비닐하우스 재배를 하고 있으며 당도가 높아 울산, 부산, 대구, 포항 등 인근 대도시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여기에 한우농가도 많다. 그 중 300마리 정도를 키우는 농가도 있어 부촌의 명맥을 계속 유지하는 바탕이 되고 있다.

                      ↑↑ 입천리의 외곽 전형적인 농가의 모습.   

  정철교 이장은 "오래 전부터 다른 마을에 비해 다소 넉넉한 생활을 했던 마을답게 주민들 모두가 여유로운 마음으로 서로 돕고 어른을 공경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며 "앞으로 면사무소와 소방서가 어일리에서 입천리로 이주하게 되면 크게 발전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입천리의 한우농가.   

  정 이장의 말대로 양북면의 주요 관공서를 입천리로 옮기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현재 면소재지인 어일1리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만일 입천리에서 부지만 제공이 된다면 주요 관공서가 이 마을로 옮길 가능성도 열려 있다.

  입천리의 각 자연마을은 집성톤의 명맥을 잘 이어오고 있다. 효동은 김씨, 지저는 정씨, 포구정은 이씨, 시무내는 우씨가 주로 모여살고 있으며 최근 들어 외지에서 유입된 인구를 제외하면 거의 유동적이지 않은 상태다.

                      ↑↑ 입천리의 최고령자 박필란 할머니.   

  시무내에 있는 원모재(遠慕齋)는 포은 정몽주의 12세손 정문형 공파 13세손 정광진, 정광택의 은덕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1933년 후손인 정문영이 중심이 돼 선영 아래에 건립했다. 비록 입천리에서 산골짜기 외딴 곳에 있는 재실이지만 건축미와 주변 환경이 빼어난 편이다.

                      ↑↑ 제2발전소 엔지니어링부 직원들이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마을 관정 패널하우스를 철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입천리의 최고령자는 박필란(94) 할머니다. 박 할머니는 "두산리에 살다가 일본놈들이 위안부를 강제 징용한다는 말이 돌아 할머니께서 열여섯의 어린 나이에 시집을 보내 입천리 총각과 결혼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막상 시집 와 보니 곡식이 없어 굶기를 밥 먹듯이 했고 산열매를 따서 허기를 메웠다"며 "해방이 되고 나서 땅도 좀 사고 농사를 지으면서 그때부터 사람답게 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월성원전의 자매부서는 제2발전소 엔지니어링부다. 임형철 과장은 "입천리의 청년회와 월성원전의 교류는 그 어느 마을보다 원활하며 원전정책에 대한 협조가 잘 이뤄지는 마을"이라며 "마을의 살림살이가 넉넉한 입천리의 주민들이 더욱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자매부서에서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김영식   74949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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