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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생활칼럼] 자격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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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영미 작성일20-10-05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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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김영미육십 대 중반 으로 보이는 남자의 방문을 받았다. 귀농을 하고 싶다며 찾아온 것이다. 탯자리에 누룽지처럼 붙어 농사를 짓는 우리부부 이야기를 건너건너 들은 모양이다. 잠시 시간을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아 마주앉게 되었다.
 
  지금은 가까운 도시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며 장사가 너무 안 되어서 접을 위기란다. 도시나 촌이나 살기가 빡빡하기는 마찬가진가 보다며 공감이 되었다. 이참에 그간 준비해오던 귀농을 하고 싶은데 방법을 의논하고 싶단다. 농사와 연관은 있으나 관심을 두지 않은 분야라 도리어 듣고 묻게 되었다.
 
  정부에서는 농촌에 정착하려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있다. 농사를 지으려는 분이나 단순히 귀촌만을 원하든 기존 주민들에 어울릴 수 있도록 여러 정책을 편다.
 
  따지고 보면 그냥 공돈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세금을 기준도 없이 마구잡이로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지원자의 말만 듣고도 믿을 수 있다면 얼마나 사람살이가 행복할까만 현실은 자금을 받은 뒤 밤사이 종적을 감추어버리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몇 년 전보다 갖추어야할 서류도 많아지고 기준도 강화되어 불가판정을 받은 모양이었다. 남자는 막무가내로 자기 입장만을 고집하며 행정을 싸잡아 나무라며 동의를 구한다. 달래가며 조목조목 짚어 문제점을 따져보기로 했다.
 
  우선 연령이 문제되었다. 간당간당하게 제한 연령에 걸려있었다. 새로운 모험을 하려는 마음은 높이 사겠으나 노동을 하기에는 버거울듯해 보이는 나이긴 했다. 그래서 남자의 애가 더 말랐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자신이 준비해온 여러 자료들을 펼쳐놓고 하소연이다.
 
  나름 오랫동안 준비를 한 듯 하긴 하였다. 농민학교에서 수업도 들었다며 수료증을 내어놓는다. 농업기술센터에도 여러 번 방문을 한 듯 담당자를 들먹인다. 그런데 갖추어야할 중요 서류는 누락한 채다. 이유가 부인이 귀농이 싫다며 반대를 하는 가정사 때문이라네. 곁가지로 찬성을 해주는 딸 자랑으로 한참을 시달렸다.
 
  일단 서류는 차지하고 무슨 농사를 지으시겠느냐고 물었다. 양봉에 관심이 있다며 현재는 한 마리의 벌도 없지만 자금을 받아서 키워볼거란다. 그럼 벌통을 놓을 땅은 있냐니까 골짜기에 폐가를 봐두었다. 주인과 임대차 계약을 했냐는 물음에 버려진 집에 들어가 사는데 계약까지 할 필요를 못 느낀다는 데는 할 말이 없다. 그러면서 눈속임으로 주소를 우리 농막으로 하게 허락을 해달라는 본심을 드러냈다.
 
  현실적으로 벌을 키워서 꿀을 얻기까지 생활은 어떻게 하시느냐? 도시에 장사를 단박에 놓을 수는 없으니 당분간 왔다 갔다 할 것이다. 꿀을 판매할 방법은 있느냐니까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괜찮다.
 
  남자가 하는 말은 '남의 땅에서 벌을 키울 자금을 받게 거짓으로 주소를 빌려 달라'는 맥락이다. 이런이런 뻐꾸기같은 인사를 봤나! 
 
  자기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고 한 평의 땅도, 보증인도, 사육경험도 없이 확실한 판매처도 확보돼지 않은 사람을 믿고 주소를 빌려 준다는 말인가. 농사도 엄연히 사업이다. 우리도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자본을 들인 것이다. 도시의 사업만 번듯하고 농사는 헐렁해보이는가보다.
 
  확 짜증이 났다. 아무리 사람이 귀한 농촌이지만 이건 순 날로 먹으려는 속셈이다. 도시에 살다 농촌으로 이주하는 것이 남 좋으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도시에 산다는 우월감인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인성인지는 모르겠으나 기가 막힌다.
 
  물론 일반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이 남자에 국한된 이야기뿐이지만 무언가 무시당한 것 같은 억울한 기분이 든다. 촌에 산다는 이유로 우스운꼴이 된 듯 해서다.
 
  곧 명절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고향을 방문할 것이다. 그들이 촌사람들을 보는 시선이 모두 저 남자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기분이 개운해지지가 않는다. 순전히 못난 내 자격지심 때문이라면 좋겠다.
수필가 김영미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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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