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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의 The Other Side of India] 삶의 선명한 보색대비 `뭄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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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작성일20-09-17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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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슬럼독 밀리오네어'의 무대가 됐던 뭄바이의 최대 빈민가 다라비의 좁은 골목길. 다라비 지역은 2k㎡ 남짓한 좁은 지역에 100만 명가량이 밀집해 살고 있다.   
[경북신문=이상문기자] 처음 인도 땅을 밟은 곳은 뭄바이였다. 공항에 내리는 순간, 나는 당황했다. 강대국 인도의 경제수도라고 일컬어지는 뭄바이의 공항이 그처럼 허술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지금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국제공항으로 만들어졌지만 처음 내가 뭄바이를 방문했을 당시 공항은 중학교 시절 보았던 대구의 시외버스 터미널 정도의 수준에도 못 미쳤다. 진원지가 화장실일 것임이 분명한 악취가 코를 찌르고, 촉수 낮은 전등이 기분을 가라앉게 만들어 괜히 주눅이 들었다. 대학시절 처음 중국 땅을 밟았을 때 곤명 공항이 그랬었다.
 
  군용비행장 같은 곤명 국제공항은 공항 청사 전체를 지린내가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시설과 시골 구판장보다 어설픈 상점들이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곤명 공항이야 지방 도시의 공항이었고 또 내가 인도를 처음 방문한 때보다 10여 년 전의 공항이어서 그랬다 하더라도, 일국의 대표 도시의 입문이 그렇게 어수룩한 것에 나는 잠시 난감해 했다. 
                      ↑↑ 아라비아 해안의 빈민가 공동 빨래터.   

  입국심사를 하면서도 내내 그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실탄이 장전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총을 멘 군인들이 공항을 경비하고 있었는데 검고 야윈 그들은 무미건조한 눈길로 한꺼번에 쏟아지는 여행객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공항 건물 밖에 나와도 사정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깃이 없고 헐거우며 길이가 긴 인도인들의 대중적 셔츠인 흰색 구르타 차림을 한 사람들이 공항 광장에 빼곡하게 모여 있었다. 사람들의 모인 숫자로만 본다면 대규모 단체가 비행기를 타기 위해 오와 열을 갖추며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행색으로 미루어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을 찾은 것이 아니라는 추측은 누구나 할 수 있었다.

                      ↑↑ 뭄바이의 도로변에는 이처럼 거리에서 천막을 짓고 살아가는 가정이 수두룩 하다.   

  그들은 비록 흰색 옷을 입었으나 그 입성이 남루했고, 며칠째 빗 구경을 해보지 못한 것처럼 머릿결이 형편없이 헝클어져 있었다. 헐렁한 바짓가랑이 아래로 앙상한 종아리가 드러났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제는 우리나라 시골 장터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구식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그 왜 있지 않은가. 일본 나막신처럼 엄지와 검지 발가락 사이에 외고리를 걸고 끄는 신발. 값싼 고무로 만든 그 슬리퍼를 끌고 있는 사람들의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는 넓어서 그 간격이 십리나 되어 보였다. 어렸을 때는 그나마 맨발로 자랐을 것이 틀림없었다.

  내 눈에 처음 들어온 인도 본토인의 모습은 생각보다 더 초라하고 비참했다. 막 국제공항을 통해 도착하는 친지를 기다리는 행색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입성치레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들은 단지 할 일이 없어서 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외국인들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낯선 인도인들에게 한눈팔고 있는 내게 떼강도처럼 몰려드는 택시 호객꾼들.

                      ↑↑ 뭄바이 외곽의 빈민가. 쓰레기 매립장 같은 환경이지만 엄연히 빈민의 주거지다.   
  안전을 위해 선불제 택시를 타고 시내로 진입했다. 아아, 나는 그 때 보았던 길가에 줄지어 늘어섰던 빈민들의 천막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우리나라 부잣집 애완견의 우리보다 더 험한, 앉은걸음으로 겨우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나지막한 주거지. 루핑자락으로 어설프게 얹은 지붕은 바람이 불면 금방 날아가 버릴 듯이 아슬아슬하게 펄럭였다.

  한 뼘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 같은 천막 앞마당에 나앉아 더러운 기명그릇으로 끼니를 만들고 있는 여인네와, 그 곁에 벌거벗은 엉덩이로 맨땅에 퍼질고 앉아 아무것이나 주워 먹고 있는 아이들. 오빠로 보이는 열 살 남짓한 사내아이는 누이의 수세미처럼 헝클어진 머릿결을 헤치며 이를 잡아주고 있었고, 가족의 섭생을 책임지지 못할 것이 뻔해 보이는 병색이 완연한 가장은 맥없이 나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 아라비아 해안의 한 빈민가. 주민들은 하루종일 할일이 없이 모여 카드놀이를 하며 소일한다.   
  상상을 하기는 했지만 정도가 심했다. 세상에 저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었구나. 간간이 신문을 통해 보았던 아프리카 기아 난민의 뒤틀린 사지. 주먹만 한 얼굴에 비해 생뚱맞게 큰 눈을 껌벅이고, 그 눈자위를 맴도는 파리를 쫓을 기력조차 없이 축 늘어져 있는 아이의 사진을 보면서 비현실적 과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것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형편의 사람들이 내 눈 앞에 나타난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빈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곧바로 인도에 온 것을 후회했다. 나를 짓누르고 있는 고통만으로도 힘겨워 죽을 지경인데 저들의 아픔마저도 원색적으로 고스란히 마주쳐야 한다는 사실에 저절로 비명이 흘러 나왔다. 팔뚝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시원하게 에어컨이 나오는 택시 안의 안락의자에 앉아, 생의 극단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나의 우울증은 더욱 깊어지리라는 예감을 했다.

                      ↑↑ 버리고도 남을 헌 신발을 모아 새로 고쳐 파는 가난한 인도의 주민.   
  어느 다리를 건너자 문득 빈민가는 끝이 났다. 택시는 제법 근사한 시내로 들어섰다. 길거리는 언제 그런 비참한 삶이 존재했었냐는 듯이 자동차와 사람들의 행렬로 부산하고 생기가 넘쳐 보였다. 대부분의 도시가 그러하듯 대기는 자동차 매연으로 뿌옇게 흐려져 있었고, 거대한 입간판의 노골적인 상업광고들이 클로즈업으로 다가왔다. 길가의 식당에서 풍기는 기름지고 향기로운 음식냄새와, 수레에 풍성하게 실린 싱싱한 과일들이 보였다.

  식당과 상점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아랫배는 산달이 임박한 임산부의 배처럼 불러 있었고, 공포를 느낀 자라목처럼 머리와 어깨를 구별하는 목선은 지워지고 없었다. 이마와 뺨에는 개기름이 흘러 번들거렸고, 털북숭이 팔목은 다리를 건너기 전 빈민가에서 보았던 중년 사내의 허벅지보다 굵어보였다. 그리고 그 목덜미와 팔뚝에 친친 감긴 금장식들. 풍요로 넘쳐나는 뭄바이 시가지의 인도인들을 보면서 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선명한 보색대비를 단시간에 체험한 듯해 경미한 어지럼증을 느끼고 있었다.

  여행은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갖는다고 평소 생각해왔다. 하나는 심신의 피로를 풀기 위한 휴식의 의미로 즐기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생소한 문화를 접하며 세계관을 넓히는 교훈적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인도에 닿은 나는 갑자기 다가온 문화적 충격에 당황하고 있었다. 애초 인도를 향할 때의 마음은 이 풍진 세상의 온갖 시련을 떨치고 편히 쉬면서 극도로 진전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목적을 안고 있었지만, 그것은 말짱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는 직감을 했다. 짧은 시간에 체험한 인도의 모습은 내게 더할 나위 없는 혼란을 주었고, 결단코 나의 한갓진 감정의 유희를 용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정해 버렸다.
이상문   iou5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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