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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의 The Other Side of India] 신비롭거나 노골적으로 친근하거나… 인도의 일상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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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작성일20-09-10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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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가장 큰 세탁공장이라고 불리는 뭄바이의 도비가트. 세탁을 담당하는 계급인 도비들의 집단거주지역인 빈민가 건너 뭄바이의 마천루가 올라가고 있어 묘한 대조를 보인다.   
[경북신문=이상문기자] 인도와 우리나라는 3시간 30분의 시차가 난다. 처음 인도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긴 비행시간에 지쳐 숙소에서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해가 중천에 떠있는 걸로 봐서 이미 한낮인 것은 분명했다. 그때 나는 시차 개념이 없었다. 숙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거리로 나섰다. 더위를 동반한 잔인한 햇살이 한가로운 인도의 골목길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었다.

  그 거리에는 단봉낙타처럼 등에 혹이 불쑥 솟아난 검정색 소가 한 마리 서 있었고, 그 소가 만들어 놓은 그늘 아래에 오렌지색 옷을 입은 수행자가 앉아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지금 몇 십니까?"

  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소의 배아래 축 쳐져있는 씨주머니(참고로 그 소는 수컷이었다)를 만지작거리더니 대답했다.

  "열십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과연 인도로구나. 세상의 온갖 신비로 가득한 나라가 인도라더니 저 수행자는 시계를 보는 대신 그걸 만지고 시간을 알아맞히는구나.'

  신기해하면서 골목길을 한 시간 정도 어슬렁거리다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그 수행자를 만났다. 소도, 수행자도 처음 보았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자세도 그대로였다. 나의 호기심은 또 발동했고, 그에게로 다가가서 다시 시간을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역시 소의 그것을 쓰다듬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열한십니다."

  탄복할 일이었다.

  '역시 인도다. 인도에는 수행자도 많고 과학적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도처에 늘렸다더니 첫날부터 만나게 되는구나.'

  나의 궁금증은 한계를 넘었다. 마음속에 궁금증을 담아두지 못하는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대체 시계도 보지 않고, 소의 아랫부분을 만져서 어떻게 시간을 알 수 있습니까? 혹시 소의 그것은 시간의 변화에 따라 감촉이 달라지는 겁니까?"

  나의 질문에 수행자는 잠시 눈을 껌벅이더니만 태연하고 담백하게 대답했다.

  "이걸 치워야 저기 길 건너에 있는 시계탑이 보입니다."
 
                    ↑↑ 바라나시의 갠지즈강변의 메인 가트. 가트는 강변에 계단식 둑을 쌓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종교행사나 목욕을 즐기게 만든 장치를 말한다.   

  마치 내가 겪은 체험담처럼 말했지만 실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도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우스갯소리다. 하지만 이 짧은 유머가 인도를 설명하는데 가장 적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촌철살인이다.

  인도를 동경하는 많은 사람들은 인도를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나라로 치부한다. 실제로 인도 땅을 떠돌고 있는 여행자들도 그 선입견에 사로잡혀 아무리 황당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황홀해 하기까지 한다. 인도인들의 무례와 안하무인에 맞닥뜨려도, 상인이나 릭샤왈라에게 사기를 당해도, 상식적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건과 마주쳐도 '인도니까'로 간단하게 넘어간다. 덥고 척박한 인도 땅을 여행하는 것을 그 자체가 고행이라고 생각하며, 자연환경의 열악함과 더불어 인도인들의 요령부득한 행위마저도 고행의 한 부분이라고 치부한다.

                      ↑↑ 바라나시 뱅골리토리의 입구 시장. 사람들이 타고다니는 사이클릭샤와 짐수레, 상인들, 주민들 틈으로 소가 한가롭게 거닐고 있다.   

  하지만, 냉정히 따지고 보면, 인도와 인도인의 문화와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인도가 신비하다, 그렇지 않다 따지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울 수도 있다. '스탠리 월퍼트'라는 미국의 인도사학자는 그의 저서 '인디아, 그 역사와 문화'에서 '안정과 역동, 지혜와 무지, 금욕과 탐욕, 인내와 열정이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용솟음치는 곳'이라고 인도를 정의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인 인도는 그의 정확한 지적대로 '극단적으로 넘치는 부나 비참한 빈곤, 기쁨과 고통, 아름다움이나 공포'가 과장된 모습으로 공존하고 있다. 아니다. 이런 생각도 위험한 속단인지 모른다. 인도인이 아닌 채 인도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이미 객관적 이성을 상실한 상태고(인도 밖에서 인도를 바라보는 시선이 가장 객관적이라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그 시선은 오랫동안 익숙해진 자신의 문화가 교정한 것이어서 상당히 주관적이다), 진실이 왜곡되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모든 판단은 자신의 가치로 재단된다.

                      ↑↑ 뭄바이 빈민가의 아이들. 오래전 우리의 아이들이 했던 놀이와 비슷한 놀이를 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차례 마주치는 기상천외한 사건들은 그 자체로 인도 안에서 존재하는 것이며, 그들은 오랜 과거에서부터 그랬듯이 앞으로도 태연하게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호들갑스러워 하며 경탄해 하는 온갖 신비스러운 일들이, 그들에게는 멀쩡한 일상인 것이다. 그들은 주어진 삶을 침착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괜히 우리가 침소봉대 하여 떠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데칸고원의 검고 뜨거운 땅을 갈던 가녀린 다리의 농부나,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물을 힘차게 저어 나를 강 건너까지 데려다 준 무뚝뚝한 얼굴의 청년 사공. 혹은 20시간이 넘게 지연되는 숨 막히게 더운 열차 안에서도 검다 쓰다 말 한마디 않고 잠에 곯아떨어져 있던 승객들이나, 현란한 격자형 석재 문살을 가진 대저택에서 한가롭게 창문 밖을 내다보던 라자스탄의 귀족 부인. 그들 모두의 삶과 나의 삶의 무게는 등가물이다. 어느 누구의 삶이 더 고귀하고 또 어느 누구의 삶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 뭄바이의 게이트 오브 인디아. 아라비아해의 관문이기도 해 과거 해상무역의 거점이었다.   

  북인도 갠지스 강 상류에서 수행하는 힌두 승려들이나, 룽다가 휘날리는 히말라야 산록에서 살아가는 산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때, 마치 그들의 영혼만 고결하고, 그들의 삶만 신비한 것처럼 설명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물론 이들은 우리의 환경과 현격하게 동떨어진 열악한 상황에서 살아가면서도 큰 욕심도 없고, 터무니없이 남을 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승의 저 편에 존재하는 사후의 세계에 대한 확실한 믿음으로 넉넉한 심성까지 지니고 있으므로 그들의 삶이 상대적으로 우리의 삶보다 숭고해 보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절대적으로 그들의 삶이 속진에 찌든 우리의 삶보다 고급스럽다고 강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인도를 떠돌면서, 혹은 히말라야 산 속을 헤매면서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거간하는 이 씨의 삶을 생각했고, 울산공단 시급 노동자 박 씨 아주머니의 삶을 생각했다. 내게 있어서 그들의 삶은 훨씬 노골적인 친근감이 있으며, 생경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상문   iou5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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