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경북 이야기보따리 수기 공모전-동상작] 하루 갉아먹으며 지친 삶 위로… 경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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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재 작성일20-09-09 16:05본문
[경북신문=장성재기자] ↑↑ 경산 반곡지 봄 풍경
◆ 동상작 = 심 점 련
반 곡 지
길이 막혔다. 가는 길과 오는 길, 이차선 도로에 자동차들이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다가와 붙는다.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불쑥 들어온다. 가다 서다 드디어 목적지가 보인다.
초입에 들어서자 복사꽃이 반갑다고 손을 내민다. 사람들은 복사꽃과 사진 찍기 분주하고 벌은 날개에 단내가 나도록 대목장보기에 바쁘다. 그 사이로 배가 불룩한 벌 한 마리가 윙하며 날아간다. 우리도 복사꽃을 배경으로 포즈를 잡는다.
반곡지는 경북 경산에 있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는 저수지다. 저수지란 농사를 짓기 위해 물을 저장하는 곳으로 곡식들의 젖통이다. 이 지역에는 강수량이 적은지 가는 곳곳마다 저수지가 많이 보인다. 반곡지도 처음에는 여느 저수지와 다름없는 물 저장고였으리라.
사진 찍기 좋은 녹색명소라는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에는 반곡지의 사계를 찍은 사진이 있고, TV에 방영된 곳이라고 반곡지의 이력들을 자랑한다. 옆에는 반곡지라는 시비도 얌전하게 서 있다. 물과 왕 버들이 하늘을 만나는 곳이라는 문구가 마음을 끈다.
들쑥날쑥한 차들의 엉덩이를 피하여 우리도 한 바퀴 돌아볼 심상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다양한 모습의 왕 버들, 왕 버들은 서로 손에 손을 잡고 우리를 환영한다. 문득, 왕 버들의 옹이가 나를 쳐다본다. 얼마나 아팠으면 저렇게도 속이 텅 비어버렸을까. 황새다리같이 되어버린 노거수의 몸통과 반곡이라는 이름이 가슴에 박힌다. 반곡지에도 큰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반쯤 죽을 뻔 한 나무들의 사연을 소반에 담았다는 뜻인지. 그래도 반곡지에 발을 담그고 너울거리며 춤을 추는 왕버들은 노년이 행복한 어르신을 보는 것 같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하더니, 상처투성이인 왕 버들들이 반곡지를 지키고 있다.
왕 버들은 이제 이파리만 하늘거려도 이내 서로의 속내를 안다. 숨었던 해가 얼굴을 내밀면 찌푸렸던 수면은 어느새 환한 도화지가 된다. 왕 버들이 비스듬히 포즈를 취하면 반곡지의 깊은 가슴에서는 또 한 폭의 산수화가 올라온다.
화가들이 여기저기에 자리를 폈다. 수채화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고 이젤도 없이 땅바닥에 놓고 유화를 하는 이도 보인다. 왕 버들은 어느새 연두색 옷을 벗고 녹색 옷으로 갈아입었다. 화가들은 한가로운 듯 능숙하게 붓을 움직이며 푸르게 붉게 자신의 삶을 자아내고 있다.
반곡지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인 듯하다. 주인이 손님을 대접하듯 자기 그늘에 앉아쉬어가라고 자리를 내어준다. 아무도 사양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한 장씩 추억을 남기고 사라져 가는 사람들. 나도 그 자리에 앉았다. 다들 쉼을 찾아 왔지만, 또 하루를 갉아 먹으며 삶에 지쳐가는 뒷모습들이다.
수심이 깊다고 조심하라는 팻말이 보인다. 산책길이 다듬어지지 않아 엉금엉금 기어가는 사람도 있다. 나무는 사람들의 발에 밟혀 뼈가 다 빠져 나온 모습으로 기슭에 버티고 서 있다. 상처를 덮었던 흔적은 이미 벗겨 나간 지 오래된 모습으로 아픈 것도 부끄러움도 다 체념해 버렸는지. 뿌리에 한줌의 흙이라도 덮어 주고 싶다. 가파른 언덕에 자리를 잡았으니 어떻게 하나. 한번 그 자리에 심겨진 나무가 좋다고 거기 있고 싫다고 어디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반곡지의 품속에 들어가지 못한 나무는 봄도 여름도 겨울처럼 살고 있다.
반곡지에는 사계절이 숨어 있다. 봄에 오면 낙엽 지는 가을이 보이고 가을에 오면 꽃피는 봄이 보인다. 여름에 오면 누구에게나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게 하고 겨울에 오면 싱그러웠던 여름날을 추억하게 한다. 겨울도 여름인 양 여름도 겨울인양 물속에서 서로 껴안고 용서하며 어우러져 너울너울 춤을 추며 살아간다.
어머님이 언젠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야야 젊었을 때에는 육십이란 나이가 되면 많이 살아서 뭔가 속이 꽉 찰줄 알았는데, 살아보니 환갑 그거, 아무것도 아니더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며느리를 맞을 준비가 되지 않은 어머님이 나를 품어주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어 하신 말씀으로 들었다. 애초에 시댁은 내 핏줄이 아님을 알면서 왜 혈육의 전율을 느꼈을까. 왕 버들도 제 그림자를 품어줄 곳은 반곡지 밖에 없듯, 내가 있어야 할 곳도 어머님 그늘밖에는 없었던 것인가. 세월 속에 남아있는 옹이는 이제 나를 단련시키는 삶의 근육이 되었다.
반곡지에서 30년을 넘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팔순 화가의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다. 왕 버들은 춤을 추고 복사꽃은 붉게 타오른다. 화가는 일어나 허리를 펴며 한걸음 물러났다. 붓을 놓고 먼 하늘에다 긴 한숨을 내쉬며 연신 고개를 갸우뚱 그린다. 그림에 완성이 있을까.
내가 걸어온 긴 시간 나도 내 그림을 그렸다. 내 그림 위를 다시 자박자박 걸어가 본다. 어머님이 속이 찰 것 같다는 나이를 벌써 지났다. 나 역시 속이 차기는커녕 점점 더 비워져가는 것 같다. 채워지지 않는 내 도화지 위에도 오늘은 복사꽃이 활짝 피었으면 좋겠다.
맨 처음 세상은 어떤 곳 이었을까. 텅 빈 곳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가장 흔한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 고 성경에 나와 있다. 흙과 흙이 만나 사방으로 다니며 나는 무슨 그림을 그렸을까. 때로는 흰 구름 속에 푸른 하늘을 그리기도 하였고 먹장구름 속에 번개가 치는 그림을 그리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맑은 날과 흐린 시간 속에 허덕이다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팔순의 화가가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다시 붓을 잡는다. 검은색 물감을 살짝 찍어 머리를 그리고 눈을 그린다. 이제야 두 사람이 손을 잡았다. 그림이라도 사람이 없는 것은 허전하게 보인다.
반곡지를 한 바퀴 휘의 돌았다.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할 시간이 오고 있다.
복작 그리며 달려와 사진을 찍던 사람들은 다 집으로 돌아갔다.
달그림자를 품은 반곡지도 잠이 든다.
장성재 blowpaper@naver.com
◆ 동상작 = 심 점 련
반 곡 지
길이 막혔다. 가는 길과 오는 길, 이차선 도로에 자동차들이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다가와 붙는다.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불쑥 들어온다. 가다 서다 드디어 목적지가 보인다.
초입에 들어서자 복사꽃이 반갑다고 손을 내민다. 사람들은 복사꽃과 사진 찍기 분주하고 벌은 날개에 단내가 나도록 대목장보기에 바쁘다. 그 사이로 배가 불룩한 벌 한 마리가 윙하며 날아간다. 우리도 복사꽃을 배경으로 포즈를 잡는다.
반곡지는 경북 경산에 있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는 저수지다. 저수지란 농사를 짓기 위해 물을 저장하는 곳으로 곡식들의 젖통이다. 이 지역에는 강수량이 적은지 가는 곳곳마다 저수지가 많이 보인다. 반곡지도 처음에는 여느 저수지와 다름없는 물 저장고였으리라.
사진 찍기 좋은 녹색명소라는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에는 반곡지의 사계를 찍은 사진이 있고, TV에 방영된 곳이라고 반곡지의 이력들을 자랑한다. 옆에는 반곡지라는 시비도 얌전하게 서 있다. 물과 왕 버들이 하늘을 만나는 곳이라는 문구가 마음을 끈다.
들쑥날쑥한 차들의 엉덩이를 피하여 우리도 한 바퀴 돌아볼 심상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다양한 모습의 왕 버들, 왕 버들은 서로 손에 손을 잡고 우리를 환영한다. 문득, 왕 버들의 옹이가 나를 쳐다본다. 얼마나 아팠으면 저렇게도 속이 텅 비어버렸을까. 황새다리같이 되어버린 노거수의 몸통과 반곡이라는 이름이 가슴에 박힌다. 반곡지에도 큰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반쯤 죽을 뻔 한 나무들의 사연을 소반에 담았다는 뜻인지. 그래도 반곡지에 발을 담그고 너울거리며 춤을 추는 왕버들은 노년이 행복한 어르신을 보는 것 같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하더니, 상처투성이인 왕 버들들이 반곡지를 지키고 있다.
왕 버들은 이제 이파리만 하늘거려도 이내 서로의 속내를 안다. 숨었던 해가 얼굴을 내밀면 찌푸렸던 수면은 어느새 환한 도화지가 된다. 왕 버들이 비스듬히 포즈를 취하면 반곡지의 깊은 가슴에서는 또 한 폭의 산수화가 올라온다.
화가들이 여기저기에 자리를 폈다. 수채화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고 이젤도 없이 땅바닥에 놓고 유화를 하는 이도 보인다. 왕 버들은 어느새 연두색 옷을 벗고 녹색 옷으로 갈아입었다. 화가들은 한가로운 듯 능숙하게 붓을 움직이며 푸르게 붉게 자신의 삶을 자아내고 있다.
반곡지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인 듯하다. 주인이 손님을 대접하듯 자기 그늘에 앉아쉬어가라고 자리를 내어준다. 아무도 사양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한 장씩 추억을 남기고 사라져 가는 사람들. 나도 그 자리에 앉았다. 다들 쉼을 찾아 왔지만, 또 하루를 갉아 먹으며 삶에 지쳐가는 뒷모습들이다.
수심이 깊다고 조심하라는 팻말이 보인다. 산책길이 다듬어지지 않아 엉금엉금 기어가는 사람도 있다. 나무는 사람들의 발에 밟혀 뼈가 다 빠져 나온 모습으로 기슭에 버티고 서 있다. 상처를 덮었던 흔적은 이미 벗겨 나간 지 오래된 모습으로 아픈 것도 부끄러움도 다 체념해 버렸는지. 뿌리에 한줌의 흙이라도 덮어 주고 싶다. 가파른 언덕에 자리를 잡았으니 어떻게 하나. 한번 그 자리에 심겨진 나무가 좋다고 거기 있고 싫다고 어디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반곡지의 품속에 들어가지 못한 나무는 봄도 여름도 겨울처럼 살고 있다.
반곡지에는 사계절이 숨어 있다. 봄에 오면 낙엽 지는 가을이 보이고 가을에 오면 꽃피는 봄이 보인다. 여름에 오면 누구에게나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게 하고 겨울에 오면 싱그러웠던 여름날을 추억하게 한다. 겨울도 여름인 양 여름도 겨울인양 물속에서 서로 껴안고 용서하며 어우러져 너울너울 춤을 추며 살아간다.
어머님이 언젠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야야 젊었을 때에는 육십이란 나이가 되면 많이 살아서 뭔가 속이 꽉 찰줄 알았는데, 살아보니 환갑 그거, 아무것도 아니더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며느리를 맞을 준비가 되지 않은 어머님이 나를 품어주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어 하신 말씀으로 들었다. 애초에 시댁은 내 핏줄이 아님을 알면서 왜 혈육의 전율을 느꼈을까. 왕 버들도 제 그림자를 품어줄 곳은 반곡지 밖에 없듯, 내가 있어야 할 곳도 어머님 그늘밖에는 없었던 것인가. 세월 속에 남아있는 옹이는 이제 나를 단련시키는 삶의 근육이 되었다.
반곡지에서 30년을 넘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팔순 화가의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다. 왕 버들은 춤을 추고 복사꽃은 붉게 타오른다. 화가는 일어나 허리를 펴며 한걸음 물러났다. 붓을 놓고 먼 하늘에다 긴 한숨을 내쉬며 연신 고개를 갸우뚱 그린다. 그림에 완성이 있을까.
내가 걸어온 긴 시간 나도 내 그림을 그렸다. 내 그림 위를 다시 자박자박 걸어가 본다. 어머님이 속이 찰 것 같다는 나이를 벌써 지났다. 나 역시 속이 차기는커녕 점점 더 비워져가는 것 같다. 채워지지 않는 내 도화지 위에도 오늘은 복사꽃이 활짝 피었으면 좋겠다.
맨 처음 세상은 어떤 곳 이었을까. 텅 빈 곳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가장 흔한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 고 성경에 나와 있다. 흙과 흙이 만나 사방으로 다니며 나는 무슨 그림을 그렸을까. 때로는 흰 구름 속에 푸른 하늘을 그리기도 하였고 먹장구름 속에 번개가 치는 그림을 그리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맑은 날과 흐린 시간 속에 허덕이다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팔순의 화가가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다시 붓을 잡는다. 검은색 물감을 살짝 찍어 머리를 그리고 눈을 그린다. 이제야 두 사람이 손을 잡았다. 그림이라도 사람이 없는 것은 허전하게 보인다.
반곡지를 한 바퀴 휘의 돌았다.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할 시간이 오고 있다.
복작 그리며 달려와 사진을 찍던 사람들은 다 집으로 돌아갔다.
달그림자를 품은 반곡지도 잠이 든다.
장성재 blowpa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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