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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북 이야기보따리 수기 공모전-은상작] 찬란한 빛깔의 독립운동가 자취 따라 밟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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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재 작성일20-09-08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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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무령 이상룡 생가.   
  [경북신문=장성재기자] 2019년은 여러모로 뜻깊은 해이다.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고, 개인적이기는 하지만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학부모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두 사건이 나에게는 '휴직 중 독립운동사에 대한 독서'로 연결이 되었다. 평소 역사에 대한 관심은 많았지만 독립운동가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었다는 반성과 함께 도서관에서 독립운동과 관련된 책을 빌려 닥치는 대로 읽었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이름과 주요 업적만 알았지 구체적인 활동이 무엇인지 모르는 독립운동가에 대해 알고 싶었고, 안중근, 김구, 윤봉길 같이 교과서나 위인전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유명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생애가 알고 싶었다. 그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쳤기에 일신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친일파나 밀정이 되지 않고 독립운동가가 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우리나라에 독립운동으로 유명한 3대 가문이 왕산 허위, 석주 이상룡, 우당 이회영 가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특히 허은의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 소리가'라는 책을 읽고 왕산 허위 가문과 석주 이상룡 가문이 혼인으로 맺어졌으며 그 두 가문 사이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정말 대단한 집안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두 가문 모두 경북 구미와 안동 출신이기도 하다니. 수십 권의 책을 읽고 그들의 삶을 알고 나니 그들의 흔적이 있는 곳을 내 두 눈으로 보고, 온몸으로 그들을 느끼고 싶었다.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이 경북 구미시 임은동에 위치한 왕산 허위 기념관이다. 내 고향이 구미이고, 그곳에 왕산 초등학교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교명이 왕산 허위라는 대단한 독립운동가의 호에서 따온 것이라는 것은 미처 몰랐다가 알고 난 후에 느낀 놀라움과 부끄러움이란. 서울 동대문에서 청량리역에 이르는 6차선 도로명이 왕산로인데 그 이름의 유래 역시 왕산 허위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왕산 허위 선생은 1855년에 구미시 임은동에서 나고 자랐으며 13도 창의군 의병 총대장으로 서울 진공 작전에 나섰고 1908년 일제에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갇힌 후 교수형으로 순국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훗날 안중근 의사가 허위를 평하여 "우리 이천만 동포에게 허위와 같은 진충갈력 용맹의 기상이 있었던들 오늘과 같은 나라의 치욕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본시 고관이란 제 몸만 알고 나라는 모르는 법이지만, 허위는 그렇지 않았다. 따라서 허위는 관계 제일의 충신이라 할 것이다" 라고 했다.

  영상 추모관에 들러 왕산 허위 선생의 일생을 영상으로 관람하고 전시실을 둘러본다. 개관 시간에 맞춰 입장한지라 관람객이 없어 조용하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왕산 선생의 업적과 어록 등이 전시되어 있다. 기념관을 나와서 우측으로 가면 왕산 허위 선생의 묘소와 유허비가 있다. 허위 선생 숭고한 뜻이 마음속에 커다란 무게로 느껴져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무덤 앞에 선다. 지긋이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 큰 뜻을 가슴 속에 새겨본다.

  왕산 허위 가문과 석주 이상룡의 가문의 연결 고리인 허은 여사는 왕산 허위 선생의 사촌 형 범산 허형의 손녀이자 허발의 딸로 허씨 일가를 따라 만주로 망명한 후 고성 이씨 집안으로 시집가 시조부 석조 이상룡 선생, 시아버지 이준형 선생, 남편 이병화를 힘들게 뒷바라지했다. 독립운동가의 생계를 실질적으로 도왔던 여성의 독립운동 업적을 공로로 인정받아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경상북도 안동시 법흥동에 있는 임청각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소개로 더 유명해진 곳이다. 1519년에 지은 99칸 집인데 일제가 임청각의 맥을 끊기 위해 집 중앙을 가로지르는 철도를 놓아 집이 반토막이 났다. 마당 가운데 우물이 있고 우물 방에서 석주 이상룡 선생이 태어나셨다고 한다. 임청각에 머물면서 제일 넓은 방에 가 보면 퇴계 이황 선생이 쓰신 임청각이라는 현판과 함께 독립운동가 훈장이 대청마루의 4면을 둘러싸고 있다. 그곳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고매한 정신이 깃드는 기분이다. 옛집이라 외풍이 세고 화장실에 가려면 신발을 신고 걸어 나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독립운동가의 영혼이 깃든 이곳에 하룻밤 묵는 것만으로 영험한 기운이 서리는 것 같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외세의 침입으로 나라가 혼란한 시기에 의병을 일으키고, 애국 계몽 운동을 하며 협동학교를 설립하여 후학을 양성한다. 1910년 만주로 건너가 경학사 설립, 서로군정서 독판, 임시정부 국무령에 오르는 등 독립운동에 여생을 바치셨다. 가난하고 굶주리며 화적패들의 행패를 감수해가며 모진 세월을 독립에 대한 희망으로 버티셨다.

  다음 날은 경북 안동시 임하면에 소재한 경상북도 독립운동 기념관에 들렀다. 올해 독서의 주제를 독립운동으로 잡은 엄마 덕에 유치원,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는 여행 코스가 조금 지루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다행히 초등학생용 학습지를 입구에서 나누어 주신다. 전시 해설을 보고 빈칸을 채울 수 있도록 만든 학습지인데 두 아이는 신이 나서 빈칸을 채운다. 임청각에서 하룻밤 자며 이 집이 어떤 의미가 담긴 집인지 설명을 들었기에 임청각은 보지 않고도 쓸 수 있다.

  경상북도 독립운동 기념관은 2017년에 건립되었는데 규모가 크고 인테리어도 무척 세련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경북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성지라고 일컬을 정도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곳이다. 그 명성에 맞게 1894년 외세에 맞서 일어선 의병부터 1945년 조국 광복 때까지 경북 사람들의 국내외 독립운동을 전시해 놓고 있다. 의병항쟁, 국채보상운동, 만주 지역에서의 항일투쟁, 의열투쟁, 한국광복군의 활동 등 항일투쟁의 역사를 고스란히 알 수 있는 곳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거리에서 본 가을 하늘은 푸르고 높았다. 노을이 지는 곳으로 차를 몰아가며 찬란한 빛깔로 하늘을 물들이는 풍경을 보니 우리 나라의 독립운동을 위해 비장한 각오로 스러져갔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영혼도 저와 같은 찬란한 빛깔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장성재   blowpa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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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