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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북 이야기보따리 수기 공모전-금상작] 시들지 않는 영혼·사랑 달디단 예천 물에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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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재 작성일20-09-0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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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수정을 지키는 수령 500년 회화나무(뒤쪽)와 소나무 두 그루.   
[경북신문=장성재기자] ◆ 금상작 = 박 종 순 
  문 리버 삼수정
 
  강물 흘러가는 소리를 멀리서라도 들을 수 있다면, 가끔 강가로 나가 물결의 춤을 지켜볼 수 있다면 그는 자연의 사람이다. 어쩌면 일생동안  큰 선물을 곁에 두고 사는 것이다. 강 중에서도 낙동강을 그리며 산지 꽤 오래 되었다. 미쁜 여동생이 예천의 남자를 만나 결혼하여 시작된 인연이다. 물이 맑고 달다고 하는 곤충의 도시 예천, 그곳은 낙동강으로 인해 드높은 영원의 이름을 얻었다고나 할까?

  예천 풍양면에 위치한 '낙동강 쌍절암 생태숲길'이 2017년 우리나라 걷기여행축제에 선정된 것은 나처럼 강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횡재한 듯 가슴 벅찬 일이다.

  강 못지않게 나무를 사랑하기에 청곡길에 위치한 삼수정(三樹亭)에 제일 먼저 들르기로 한다. 예천은 몇 번 다녀왔으나 그곳을 찾아가는 길은 그리 수월하지 않았다. 어느 새 논에는 모내기를 마쳐 아기 벼 싹이 줄지어 있고 도로변에는 봄 코스모스인양 가는 허리를 흔들며 노오란 금계국이 어리숙한 우리 자매를 흘끔거린다. 

  고불고불 오지 길을 넘고 넘으니 드디어 삼수정이 보인다. 멀리 바라만 보던 낙동강에 두 발을 닿으려 하니 그 감격을 가눌 길 없다. 삼수정은 낙동강이 굽이도는 연안마을 언덕 위에 자리하여 강을 언저리마저 훤히 내려다보고 있다. 정자의 언덕 뜰에는 본래 세 그루의 회화나무가 있었다 한다. 언젠가 두 그루는 고사하고 줄기를 굵게 튼 해찬솔이 동양화처럼 서 있다. 삼수정은 홑처마에 팔작지붕의 형태인데 가운데 마루방을 들여 그 희소가치에 경북문화재자료 486호로 지정되어 있다. 500년 수령의 회화나무가 잎층층 가지층층 동래 정씨 문중의 역사를 깨단하게 한다. 팔벌려 회화나무 기둥을 안아본다. 회화나무는 은행나무 등과 함께 대표적인 학자수로서 집안에 심으면 가문이 번창하고  큰 인물이 난다하여 아무곳이나 함부로 심지 않았던 것이다. 오래된 마루에 앉아 늘 그리던 낙동강을 바라본다. 강폭이 넓어 마치 누워서 흐르듯 평온하다. 한 시도 잠자지 않고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을 찾아 흐르는 강을 언제라도 바라보려는 삼수정 선인들의 사라진 발걸음이 다시 들려 옴직하다.

  삼매에 빠진 나를 동생이 일깨운다. 아쉽지만 삼수정을 뒤로하고 서둘러 생태숲길 입구에 이르자 '낙동강 쌍절암 생태숲길' 안내도가 크게 세워져 있다. 삼수정을 끼고 삼강주막까지 십여리 길을 목재 데크길로 연결하였고, 낙동강의 수려한 자연환경을 손으로 만지듯 강물을 따라 걷는다. 무엇보다 생태숲길은 나무데크로 경사가 없는 코스여서 강을 안고 벗삼아 걷는 포근함에 한 걸음 한 걸음이 정겹다. 제일 먼저 만나는 쌍절암! 암자인가 했는데 큰 바위에 새겨진 한자를 살펴보니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피하여 동래 정씨 집안 두 여인이 이곳에서 강으로 몸을 던져 정절을 지켰다는 바위인 것이다. 나는 이제사 이곳을 찾아왔건만 그 옛날 왜군의 침입이 낙동강을 슬프게 했으리라. 흘러가지 못하고 몇 백년을 이곳에 머물 두 여인의 혼을 위로하며 쌍절(雙節) 두 글자를 한번 더 가까이서 더듬어 본다.

                      ↑↑ 큰 잠자리를 닮은 길 안내판.   

  이어 낭떠러지 절벽에 위치한 관세암이 나타난다. 좁은 계단으로 비탈을 올라야 한다. 천지해(天地海) 라는 조그만 법당에 부처님이 기다리고 있다. 법당 이름에 바다 해(海)를 품고 있음이 먼 바다를 향해 흐르는 낙동강을 응원하고 있음이다. 누가 맨 처음 지었는지 좀 더 높은 곳에서 하늘과 강을 바라보고 싶은 그 마음 애련하다. 계단을 내려와 고대하던  전망대에 이른다. 전망대는 강쪽으로 돌출되면서도 둥그런 작은 마당을 이루고 있다. 아픈 다리를 쉬라는 듯 그네 의자가 네 자매를 기다린다. 잠시 앉아 땀을 식히고 낙동강에서 볼 수 있는 어류들을 살펴본다. 은어, 강준치, 돌고기, 납자루 등 모두 12종의 물고기가 자라고 있단다. 강은 흘러가면서도 늘 새 생명을 잉태하고 잠을 잊은 듯 그것을 아낌없이 키워내고 있다. 강은 어머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가슴에도 늘 강물이 흐르고 있다 했는가!

  학교 선생님인 여동생을 훌륭한 며느리로 대우하던 시부모님을 함께 모시고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굽바자로 둘러싸인 시댁은 엉세판을 어쩌지 못했지만 천생부부가 평생 지켜온 정겨운 곳이었다. 그 사립문을 열고 얼마 전 모두 하늘로 떠나셨다. 이번 나들이에서 사돈 어르신 대신 환영해준 것은 뜻밖에도 딱따구리였다. 전망대에서 한 숨 돌리고 예의 비룡교를 향해 걷는데 옆의 숲 속에서 똑또르르 똑또르르! 옥구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어머 딱따구리 있네' 하며 동생이 손가락으로 입을 가린다. 딱따구리라니 나도 실은 몇 십 년 만의 해후이다. 눈을 들어 살펴도 모습이 보이지 않자 동생이 동영상을 찍으며 그 소리를 담는다. 오색 인지 까막딱따구리인지 구분할 수는 없으나 짝을 찾는 수컷의 드러밍치고는 청아하고 신비롭다. 소리가 멈출 때까지 차마 발걸음을 옮길 수 없다. 나는 한 편의 단편영화 주인공처럼 그 소리를 강물에 담아주고 싶어졌다. 강물이 흘러흘러 바다에 이르러 바다가 건네주는 진주알처럼 내 손안에 구른다. 삼수정 마루에 앉아 멀리 말없는 강물을 바라볼 때처럼 딱따구리 환영 노래도 들으니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

  낙동강은 들풀의 손을 잡고 흘러 흘러간다. 멀리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비룡교가 손짓한다. 비룡교는 여느 다리와 달리 중앙에 두 곳의 원두막 쉼터를 설치해 놓은 것이 특이하다. 동생들이 이제 목적지에 다 왔으니그 운치있는 원두막에서 쉬어가자 한다. 흐르는 강물 위에 앉아 쉬는 색다른 기분으로 또 맘이 설렌다. 여로의 끝 삼강주막이 저 아래 보이고 여동생이 유투브를 열어 음악을 선사한다. 전국적으로 트롯 열풍이 불고 있는데 가장 어린 소년 J군이 섹스폰으로 문리버(moon river)를 연주한다. 14살 어린 나이에 앤디 윌리암스의 원곡 못지않은 수준급이다. 애잔한 선율이 낙동강을 타고 흐른다. 우리 자매들 가슴에도.

  언젠가 그대를 건널 것입니다

  우리 둘 방랑자 이 세상을 보기 위해 나왔죠

  우리는 같은 무지개의 끝을 찾고 있어요 

  강굽이를 돌아가길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쌍절암의 두 여인, 삼수정에 회화나무를 심은 조선의 선비 그리고 삼강주막을 오가던 옹춘마니들, 그 시절 사람들도 저마다 꿈을 안고 하늘 높이 떠오르는 무지개를 사모했을 것이다. 달이 떠오를 때까지 비룡교 위에서 강물을 베고 누울까. 아니 회화나무 외로운 삼수정으로 다시 돌아가, 달빛을 받으면 마치 회색빛 실크 이불을 덮고 누운 듯 흘러가는 낙동강 그 다리쯤이나 더듬어 볼까?

  나는 지금 강과 사랑에 빠져들고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 강을 따라 달려왔기에 내 영혼과 사랑은 시들지 않는다. 그것도 제일 넓은 땅 경북! 물이 달고 단 예천에서.
장성재   blowpa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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