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의 라오스로 소풍갈래?] 현실에 길든 라오스의 바뀐 모습이 아쉽다 > 실시간

본문 바로가기


실시간
Home > 건강 > 실시간

[이상문의 라오스로 소풍갈래?] 현실에 길든 라오스의 바뀐 모습이 아쉽다

페이지 정보

이상문 작성일20-09-03 19:12

본문

↑↑ 방비엥 마을 한가운데 있었던 아침시장. 지금은 방비엥 북쪽 10km 지점으로 옮겨가 여행자들이 아침시장을 보는 재미를 잃었다.   
[경북신문=이상문기자] 방비엥의 메인스트리트에는 서너 군데의 게스트하우스와 대여섯 군데의 레스토랑만 있었다. 여행자들은 방비엥에 도착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 가운데 숙소를 정했고 밥을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엄청나게 많은 숙소와 식당이 생겨났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철저하게 맞아떨어지는 현상이다. 강변에 늘어선 게스트하우스와 레스토랑, 카페들이 있던 자리는 원래 한적한 길이었다. 잡풀이 우거지고 길이 좁아 해가 지고 나면 다니기에 매우 불편했다. 어느 순간 그 길은 새로운 메인스트리트가 되었다. 쏭강을 조망하기 좋은 자리에 여행자들의 편의시설이 속속 세워졌다. 
  방비엥 메인스트리트에 아침시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마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동이 트기 전부터 아침시장은 분주했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이른 시간 방비엥 인근의 고산족들은 두 세 시간을 걸어서 내려와 난전을 폈다. 공산품이나 생활필수품을 파는 지붕이 달린 점포는 일부분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져온 먹을거리를 강으로 길게 난 풀섶에 아무렇게나 펼쳤다. 강에서 잡은 각종 물고기는 물론이고 산에서 잡은 오소리나 박쥐, 구렁이, 다슬기, 도마뱀도 흔하게 보였다. 순대를 닮은 소시지를 만들어 팔기도 하고 온갖 채소와 향신료들도 아침시장 마당에 펼쳐졌다. 아예 박쥐나 오소리를 숯불에 구워 완제품을 만들어 파는 사람도 있어 시장 안에서는 노린내가 진동을 했다.

                      ↑↑ 방비엥 아침시장의 활기.   

  장에 나온 사람들의 복장도 각양각색이었다.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모여 사는 라오스답게 장에 나와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모양새를 살피는 재미는 그 어떤 것보다 뛰어났다. 라오스 사람들이야 옷에 따라 어느 민족인지 쉽게 구분하겠지만 신출내기 여행자들은 다만 그 알록달록한 복식에 취해 카메라를 들이대기만 했다. 들고 내려왔던 물건을 다 판 고산족들은 아침에 벌어들인 돈을 침을 발라가며 세면서 다시 산으로 올라갔고 분주한 아침시장이 끝날 무렵 게으른 여행자들은 어슬렁거리며 길거리로 나섰다.

  아침시장도 방비엥에서 사라져버렸다. 마을 외곽에 번듯한 신시장이 생기면서 옮겨가 버렸다. 이제 방비엥에는 여행자들에게 내보일 중요한 아침 문화 콘텐츠 하나를 잃어버렸다. 전형적인 라오스인들의 삶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는 현장을 걷어내 버린 것이다. 그 자리에는 여행자들이 먹고, 자고, 코풀 수 있는 공간이 들어서버렸다. 중국 자본이 들어와 엄청난 규모의 호텔을 세웠다. 고산족들이 벌였던 그 정겹고 생생한 삶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그 모습을 보려면 북부 라오스로 올라가야 하는 수고를 겪어야 한다.

                      ↑↑ 방비엥 마을 한가운데 있었던 구멍가게. 지금은 24시간 편의점까지 입점해 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깨어나고 있다. 방비엥은 물론이고 아름다운 도시 루앙프라방도 엄청난 속도로 바뀌고 있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을 고스란히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하던 도시들이 한 순간 엄청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수많은 여행업자들은 라오스라는 타임캡슐을 열고 디지털 문화권의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타임 테이블을 들여다보면서 일촌일각을 다투는 사람들은 지상의 마지막 낙원 라오스로 달려간다. 해먹에 몸을 뉘고 최대한 게으름을 피우거나 1박2일 걸리는 슬로우 보트에 몸을 싣고 신선의 경지를 체험한다. 그리고 다들 이렇게 말한다. "라오스야 제발 더 나아가지 마. 잠에서 깨어나지 마" 거의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다.

                      ↑↑ 방비엥 마을 한가운데 있었던 버스 정류장. 지금은 이곳에 대형 숙박업소가 들어섰다.   

  처음 라오스에 발을 디딘 사람들은 눈앞에 놓인 그 모습에도 찬사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서너 차례 라오스의 매력에 빠져 거듭 방문하는 사람들은 라오스가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심정에 들 것이다. 나처럼 이름 없는 다리를 기억하며 스토커처럼 그 다리를 찾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침시장의 익숙하지 않는 노린내를 다시 한 번 맡아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에 새벽잠을 설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욕망은 여행자들의 이기적 발상에서 비롯된다. 라오스 사람들도 멋진 선글라스를 끼고 좋은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행자들이 사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자신들의 나라가 선진국의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보물창고 역할을 하고 있다하더라도 자신들의 삶은 고달프다고 느낄지 모른다. 우리의 눈에 비친 환상적 아름다움은 그들에게 극복하고 싶은 재앙일 수도 있다.

  돌아보지 말자. 인생은 철저하게 서사구조를 따른다.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간은 유장하게 흐른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다가올 시간뿐이다. 우리가 살아온 과거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라오스행 비행기를 타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꺼내볼 수만 있다면 그것도 좋은 발상이다. 누렇게 변색한 흑백 가족사진 속에 가르마 탄 자신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끼고 싶다면 최선의 선택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변해있고 사진은 사진으로만 존재한다. 라오스는 라오스대로 그들 방식의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그들의 행보를 저지할 아무런 명분도 자격도 없다.

  하지만, 제기랄, 사라져 버린 모든 것들은 그립다.
이상문   iou518@naver.co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이메일무단수집거부
Copyright © 울릉·독도 신문. All rights reserved.
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