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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故 신격호 회장이 남기고 간 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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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신문 작성일20-01-1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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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이 우리나이로 꼭 100세를 채우고 세상을 떠났다. 껌 하나로 국내 재계 5위의 롯데를 일군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울산에서 태어나 1941년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와세다대학 화학과를 졸업했다. 일본에서 당시 일본에 주둔한 미군이 껌을 씹는 것을 보고 일본에 껌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처음 껌 사업을 시작하면서 지은 회사명이 롯데였다.
   롯데는 괴테의 첫 소설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이름이다. 롯데라는 이름을 지을 당시 신 회장은 문학청년이었다고 한다. 문학적 기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껌이라는 아이템으로 사업을 일궜다는 생각도 든다. 남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특별한 아이템을 가지고 일본시장 공략에 성공한 것이다.
   처음 시작한 껌사업은 대성공을 거뒀다. 물량이 없어서 못 살 정도였고 자본금 100만엔, 종업원 10명의 법인체는 나날이 성공가도를 달렸다. 현재 자산 100조원대에 이른다고 하니 어느 정도의 발전을 이뤘는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그 후 초콜릿, 사탕,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사업에 잇따라 성공하면서 롯데라고 하면 식품기업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리고 잇따른 성공으로 그룹사로 성장한 것이다.
   1959년 롯데상사, 1968년 롯데물산, 1969년 롯데 오리온스 구단, 1972년 롯데리아, 1988년 롯데냉과 등 계열사들을 차례차례 설립했고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한국 정부의 투자 요청을 받고 1967년 4월 국내에 롯데제과를 세우고 껌을 생산하며 진출했다. 국내 최대 식품기업의 면모를 갖춘 롯데는 관광과 유통, 화학과 건설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그의 타계로 우리나라 재벌 1세대의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이미 재벌 2세, 3세 경영시대가 열리고 있었던 와중에 신 회장의 존재는 우리나라 경제계의 별로 남아 있었다. 물론 최근 들어 장남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면서부터 신 명예회장은 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직서 해임되는 수모를 겪었고 법원에서 한정 후견인을 지정받으면서 경영활동은 막을 내렸지만 그의 존재는 우리 재계에 거목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일제강점기 일본사회에서 성공하고 한일수교가 이뤄지기 전까지 엄청난 부를 일궜다가 조국에 투자하면서 국가 경제발전에 큰 공을 끼친 그는 우리 현대사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 분명하다. 자수성가라는 의미가 까마득한 옛날일로 여겨질 만큼 혼자의 힘으로 대기업을 일굴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져 버린 현대사회에 그가 남긴 족적은 크게 남을 것이다.
경북신문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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